배터리서 로봇·가전까지 급속 침투…"이대론 첨단분야도 종속"

[딥임팩트 차이나 쇼크가 온다]
<1> 무너지는 산업기반
中, 재고 밀어내기식 저가공세
배터리·철강 등 주력산업 위협
160만원 로봇청소기 판매 1위 등
'중국산은 싼 맛' 공식마저 깨져
핵심 공급망 中에 잠식될 우려

2023년 12월 28일 중국 베이징의 한 행사장에 샤오미의 첫 전기차 SU7이 전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내 완성차 기업인 H 사는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와이어링 하네스라는 부품을 제때 공급 받지 못해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와이어링 하네스는 차량 내부에 있는 각종 전기전자장치에 전원을 공급하는 필수 부품이다. 노동 집약적인 생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제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코로나19로 현지 부품 공장들이 셧다운되자 와이어링 하네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H 사는 라인 가동을 며칠간 중단해야만 했다. 부품 단가는 높지 않은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보니 H 사를 포함한 대다수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산 부품에 의존해온 결과였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못지 않게 와이어링 하네스 부족 문제가 완성차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후 부품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 역시 과거보다 품질을 높이면서 가격은 오히려 낮춰 국산화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값싼 가격과 높은 품질을 갖춘 중국산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국내 제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값싼 중국산 제품에 의존하다가 코로나19와 같은 공급망 불안 사태가 터지면서 국내 산업이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중국 기업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첨단산업 분야의 각종 부품과 제품들을 공격적으로 밀어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기에 놓이고 있다.


실제 중국의 철강과 석유화학 업체들은 포화 상태인 자국 시장을 벗어나 저가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고 배터리 기업들도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로봇청소기 등 일부 가전제품에서는 중국산이 ‘카피캣’ 오명을 벗고 오히려 품질 경쟁력을 앞세우는 ‘품질 공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강·배터리·로봇·가전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중국의 전방위 덤핑 공세를 해결하지 못하면 핵심 공급망이 중국에 종속돼 경제 안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철강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요소도 중국산의 공급 과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과잉 생산된 철강은 24억 9000만 톤으로 이 가운데 아시아 비중이 절반을 넘는 53.3%를 차지한다. 중국이 자국을 포함해 동남아 국가 생산 기지에서 저가 철강 ‘덤핑’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직격탄을 맞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 업계는 중국산 저가 철강이 시장 질서를 교란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덤핑 제소를 검토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탄소 감축 시대를 맞아 친환경 미래 제조업의 핵심으로 떠오른 배터리도 ‘중국 판’이 돼가고 있다. 최근 주목 받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중국이 앞서 나가고 있는데 중국 정부가 배터리 업체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중단하자 공급 과잉이 발생했고 이 물량은 고스란히 수출돼 해외로 밀려 나가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최근 전기차의 ‘캐즘(보편화 전 일시 수요 침체)’ 진입으로 배터리 성장세가 주춤한 틈을 타 시장을 장악할 기세”라고 우려했다.


중국은 공급 과잉 전략을 오히려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이들 품목의 수출 성장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해 국내 산업의 피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문제는 이런 중국의 밀어내기가 비교적 첨단 제품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품질까지 무장했다. 지난해 국내 로봇청소기 점유율 1위(35.5%)를 차지한 기업은 삼성·LG전자도, 미국 기업도 아닌 중국 업체 로보락이었다. 로보락의 가격은 160만 원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제품과 전혀 다르다.


중국 TV 업체인 TCL은 쿠팡 등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 입소문을 타고 삼성·LG전자가 버티고 있는 국내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TCL의 ‘C845’ 시리즈는 2022년 3월 쿠팡에서 처음 출시 당시 55인치부터 85인치까지 전 제품이 5분 내 품절되는 진풍경이 벌어진 바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프리미엄 TV 출하량이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중국의 TV 고급화 전략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동남아에서 미국·유럽의 견제로 유입되기 시작한 중국 전기차가 현지에서 인기가 높아지는 등 ‘중국산은 싼 맛’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며 “중국에 포위 당한 국내 산업은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위기”라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는 실제로 국내 진출을 타진하고 있고 ‘대륙의 실수’로 유명한 샤오미는 국내 보조배터리와 차량용 공기청정기 등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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