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GTX의 재난 안전과 사회·경제학

고광본 선임기자
'교통혁명 아이콘' A노선 30일 우선 개통
50m 깊이·고속 운행…화재등 대참사 대비
A~F 추진 앞서 재난상황 만전 기울이고
수도권 집중 심화·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고광본 선임기자(부국장)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노선의 1단계 수서~평택 구간이 30일 우선 개통된다. 수도권 교통지옥을 해결할 ‘교통혁명’의 아이콘으로서 기대감을 자아낸다.


다만 지하 40~50m 터널을 시속 100㎞ 이상으로 운행하니 자연스레 재난 상황에 관한 염려가 든다. 지하철 중에서도 간혹 대심도(大深度) 구간이 있지만 GTX가 1~9호선에 비해 대체로 2~5배 깊다. 속도도 지하철 표정속도(정차 포함 평균속도)보다 3배 이상 빠르다.


요는 대심도 터널에서 재난이 닥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GTX 역은 지상 출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약 6분 걸린다. 화재가 나면 이용자가 승강장 끝에 있는 4개의 피난 안전 구역까지 6분 내 도달하도록 설계된다. 하지만 8량 열차에 탄 1400여 명이 빠져나오려면 최소 10분 이상 걸린다. 이 사이 연기와 유독가스가 덮칠 수 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도 많은데 GTX에서 환기가 제대로 되도록 챙겨야 한다. 심지어 민자 구간의 한 GTX 역에서는 비용 문제로 지상 출입구를 한 곳만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터널을 통과할 때 불이 나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율현터널(52㎞)에서 ‘피난 유도등’이 배기 팬과 연동되지 않아 화재 시 좌우 방향을 구분하기 힘든 문제가 노출돼 시정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탈선 사고와 침수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테러·범죄·지진 대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당국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상 시 열기와 연기를 차단하는 공기 배출 시스템과 군데군데 비상구와 소화기를 갖추고 열차의 재질을 대부분 불연재로 사용한 게 예다. 이번 개통 노선 중 성남~동탄(28.3㎞) 구간은 SRT와 같이 쓰는데 신호·통신 시스템 간섭을 예방하고 진동·소음 감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2003년 대구지하철, 1995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하철, 1987년 런던 킹스크로스역 등에서 화재 대참사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서 재난 시나리오를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해야 한다. 대심도 철도를 운행하는 영국·프랑스·일본·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의 안전 대책도 참고해야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반 통합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민방위훈련을 할 때 확장현실(XR)로 피난 훈련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GTX는 재난 안전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안전 측면에서도 깊이 고민할 게 많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지하철을 많이 만들었다. 광역철도망도 대거 건설했다. 1970년대부터 뉴타운으로 불리는 신도시도 많이 조성했다. 그러다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2002년 도쿄의 고도와 용적률 제한을 대폭 풀기 시작했다. 대체로 5~10층이던 건물이 60~80층까지 크게 높아졌다. 2000년 이후 건설된 200m 이상 빌딩이 30개이고 현재도 그만큼 건설하고 있다. 신도시나 지방에서 광역철도망 등을 이용해 도쿄에 와서 쇼핑하고 문화생활을 즐기게 됐다. 초고령화가 심화하고 아예 도쿄로 이주한 경우도 증가해 신도시 중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준 곳도 많다. 공동화가 심화된 것이다.


정부는 1월 말 GTX A·B·C, 즉 1기 노선을 충청·강원권으로 연장하고 2기 노선(D·E·F)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4·10 총선 직전에 A노선 1단계 구간을 개통하면서 2기 계획까지 내놓은 것이다. 이는 일본 사례처럼 자칫 강남 등 서울을 비롯해 가뜩이나 밀집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 그동안 GTX 역마다 부동산 값을 들쑤셔 놓은 부작용도 나타났다. 수도권에 뒤질세라 영남·충청권에서도 지역 GTX를 추진하기로 했는데 역시 중심 도시로의 집중이 심해질 수 있다.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도 봐야 한다. GTX A~F 건설에 민간 재원 75조 원가량을 포함해 약 130조 원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과거 KTX 사례를 보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성 개발 계획은 쏟아지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사람 대신 토목 인프라 투자만 늘렸다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우리도 저출생 쓰나미와 과학기술 패권 전쟁, 신냉전으로의 진입 등 냉혹한 현실을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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