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을 하루 앞둔 27일 정치권에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둘러싼 때 아닌 공방이 펼쳐졌다. 해당 공약을 낸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주요 정당들 사이에서는 일제히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법”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센 비판’에 직면한 민주당은 “실무적 착오”라며 한발 물러섰지만 부작용 검토 없이 ‘묻지 마 공약’을 낸 뒤 악재가 발생하자 ‘궁색한 변명’으로 수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법조인 출신 인사들은 민주당의 총선 10대 공약에 포함됐던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변호사 출신인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이날 선대위 회의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모든 성관계를 국가 형벌권이 강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수많은 국민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성범죄로 수사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위협받는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동의 간음죄는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앞서 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책 공약집에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포함했다.
검사 출신 여당 인사들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범죄 피해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비동의 간음죄’는 문제가 있다”며 “피해자가 내심 동의했는지로 범죄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 원래 검사에게 있던 입증 책임이 혐의자에게 전환된다. 그랬을 경우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성동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 시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자의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민주당은 부랴부랴 공약을 철회했다. 민주당은 이날 공지를 통해 “선관위에 제출된 정책 공약에 비동의 간음죄가 포함된 것은 실무적 착오”라며 “공약 준비 과정에서 검토됐으나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민주당 선대위 상황실장도 당사 브리핑에서 “비동의 간음죄는 당내는 물론 진보 개혁 진영, 법학자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어 이번 공약으로 포함되기에는 무리가 아니냐는 상태로 정리된 것으로 들었다”면서 뒤늦게 실무적 착오를 확인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홍석준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 부실장은 “공약은 총선에 임하는 당의 가장 중요한 대국민 약속인데 실무적 착오라는 건 국민 반발에 따른 변명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박지아 녹색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한 위원장의 갈라치기 정치에 민주당이 휘말리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의 성별 갈라치기 정치와 이에 휘말렸던 민주당의 우왕좌왕 행보로 거대 양당 어디에도 ‘여성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됐다”며 민주당이 여론에 떠밀려 공약을 철회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