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이 2007년 장하성 펀드 이후 17년 만에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를 선임하면서 지배구조 쇄신에 나섰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요구해 온 외부 인사들을 경영진에 넣으면서 그동안 부진했던 신사업 추진에도 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태광산업(003240)은 29일 서울 중구 굿모닝시티빌딩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김우진 서울대 교수와 안효성 회계법인 세종 상무를 사외이사로, 정안식 영업본부장을 사내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운용은 지난달 16일 주주 제안 형식으로 이들 3명을 태광산업 이사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이 중 김우진 교수는 20년 넘게 기업 지배구조를 연구해 온 자본시장 전문가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 국민연금기금 투자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자사주 관련 연구 실적을 보유해 앞으로 태광산업의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활용과 관련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트러스톤 측은 전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주주들의 쇄신 요구에 대주주도 상당 부분 공감한 결과”라며 “앞으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주주와의 관계를 일방 소통에서 쌍방향 소통으로 전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에 설립된 1세대 섬유 회사인 태광그룹은 그동안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대주주인 이호진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지배구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태광그룹은 이 전 회장이 횡령·배임 소송에 휘말린 2012년부터 사실상 인수합병(M&A), 사업 확대 등 투자를 올스톱했다. 2022년 석유화학에 6조 원, 섬유 사업에 4조 원을 투자하는 총 10조 원 규모의 장기 투자 계획도 세웠지만 이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1년 반 가까이 구체화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트러스톤을 비롯한 주주들은 사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외부 목소리에 빗장을 걸었던 태광그룹도 지난해 이사회 중심의 독립 경영 체제를 발표하면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기 시작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의 경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미래위원회도 설립했다.
업계에서는 태광그룹이 전면적인 쇄신에 나선 만큼 그동안 정체됐던 미래 사업 추진에 다시 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주총을 통해 대표이사 사장으로 공식 취임한 성회용 태광산업 대표도 “트러스톤이 추천한 인사들의 전문성을 적극 반영해 이사회를 통해 차근차근 바꿔나가겠다”며 “매년 의례적으로 하는 투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투자를 위해 우선순위를 가리고 시급한 투자부터 하나씩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