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높은 업종일수록 PBR이 더 크게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단순히 저PBR 기업보다는 실적 등 업황이 뒷받침되는 업체에 투자를 집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에서 ‘목표 PBR’ 설정 시 기업의 규모뿐만 아니라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헬스케어 지수의 PBR은 밸류업 발표 직전인 올 1월 23일부터 이달 4일까지 4.23에서 4.81로 전 업종 중 PBR이 가장 크게 뛰었다. 한국거래소는 자동차·은행·헬스케어·정보통신 등 17개 업종을 분류해 특정 산업군의 주가 흐름을 반영하는 섹터지수를 산출해오고 있다. KRX헬스케어는 거래소가 분류한 업종 중 PBR이 가장 높다. 이어 PBR이 두 번째로 높은 KRX반도체도 같은 기간 PBR이 2.09에서 2.53으로 0.44 오르며 두 번째로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다음으로 PBR이 높은 기계장비, 정보기술(IT) 업종의 상승 폭도 각각 0.20, 0.29로 ‘PBR 마라톤’ 순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PBR이 올랐다는 것은 주당 순자산가치가 줄었거나 주가가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PBR이 가장 낮았던 KRX유틸리티는 PBR이 0.34에서 0.36으로 겨우 0.02 오르는 데 그쳤다. ‘저PBR 수혜주’로 주목 받았던 증권·은행·보험 역시 PBR 상승 폭이 0.06~0.08 수준에 머물렀다. KRX건설, KRX철강도 PBR이 각각 0.57에서 0.60으로 0.03, 0.50에서 0.51로 0.01 올랐다.
올 1월 밸류업 정책 발표 직후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 친화 정책을 확대하고 ‘저PBR 수혜주’ 타이틀이 부각되면서 이들 종목들을 중심으로 자금이 몰렸다.
하지만 밸류업 ‘약발’이 떨어지면서 밸류업 효과보다는 업황,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 등이 주가에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초 5만 3300원에 거래를 시작한 KB금융(105560)은 시가총액이 지난해 말 16위에서 9위로 7계단 뛰었으나 이달 들어 주가가 6만 원대로 하락해 시총 14위로 내려 앉았다. 연초 4만 2800원에서 지난달 말 6만 원대로 오르며 주가 상승 폭이 가장 컸던 하나금융지주(086790)도 이달 5만 원대로 떨어졌다.
애초 깜짝 실적 발표 등 호재가 주가에 선반영돼 있는 고PBR주에 후발 투자자들이 뛰어들면서 이들 종목이 더 상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KRX반도체는 미국 엔비디아발 훈풍과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로 올 1분기 17.43% 오르며 가장 많이 상승한 KRX 지수로 나타났다. 코스닥지수에서도 코스닥150 헬스케어가 33.03% 상승률을 기록했다. 인구 고령화,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바이오는 대표적인 신성장 산업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밸류업 가이드라인에서 재무지표, 사업 규모뿐만 아니라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기업이 당장 자사주를 매입이나 소각하는 대신 미래 사업에 투자했을 때 기업가치 상승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밸류업 가이드라인에서 PBR, 배당수익률, 자본수익률(ROE) 등 재무지표를 제시할 때 업종별로 다른 기준을 들이밀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