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이렇게 살아 숨만 쉬면 생존이라고 생각하지?
근데 인간은 달라.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지 생존인 거야."
좀비, 괴물 등 자극적인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선을 끌었으나 빈약한 서사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작품들에 지쳐가던 중,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이 드디어 등장했다. 원작의 세계관만 가져왔지만 서사는 탄탄하게 준비한, '연니버스'의 정점을 찍은 '기생수: 더 그레이'의 이야기다.
◇연상호 덕질의 정점...'기생수'의 또 다른 세계관 =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인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의 세계관을 가져오되 한국을 배경으로 주인공도, 메인 서사도 전부 다 새롭게 그렸다. 지난 제작발표회에서 '기생수'의 팬이라고 강조했던 연상호는 류용재 작가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구축했다.
바싹 마른 얼굴로 등장하는 주인공 수인(전소니)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으로 인해 아버지를 신고한 후 부모 없이 홀로 인생을 살아왔으며 이따금씩 당시 자신을 도와준 형사 철민(권해효)과 부녀지간 같은 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마트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 수인은 어느 날 위험을 맞닥뜨린다.
계산대에서 시비가 붙었던 전과자의 위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간 수인은 마침 하늘에서 떨어진 기생수 '하이디'의 존재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뇌의 반을 차지하며 그와 함께 살아가야 함을 깨닫고 큰 갈등을 느낀다. 이후 수인은 기생수에 의해 자신의 누나와 동생을 잃은 강우(구교환), 기생수에게 몸을 뺏긴 남편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더 그레이 팀 팀장 준경(이정현)을 만나게 되며 기생수의 목적과 어두운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CG다...제대로 구현된 크리처 = 원작과 달리 손이 아닌 얼굴의 반이 기생수로 변하는 수인의 특성상 ‘웃참(웃음 참기) 챌린지’를 유발하는 '상모돌리기' 모션이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솔직히 걱정했다. 하지만 우려는 잠시, 생각 이상으로 잘 구현된 CG와 크리처의 공격포인트를 따라가는 타격감 넘치는 액션신으로 인해 전투신에서 꽤 높은 쾌감을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CG가 잠깐 어설픈 부분이 등장할 때도 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되 이른 바 '믿고 보는' 배우들이 연기한 강우, 준경, 철민 등이 펼치는 활약이 그 공백을 메꾼다. 기자를 떠나 원작과 일본 실사화 영화까지 다 본 시청자의 입장으로서 봤을 때도 전작들을 뛰어넘는 훌륭한 완성도다.
◇시즌 2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 '기생수: 더 그레이'는 시즌 2부터가 진짜 이야기가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기생수가 대립하는 과정을 그린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배우려는 기생수의 모습을 통해 사회 속 조직과 개인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전사와 사회적인 문제들을 보며 시청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기생수'의 핵심 메시지다.
이 핵심 메시지를 연상호는 시즌 2에서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시즌 1 속 떡밥을 통해 전달한다. 수인과 강우가 더 그레이 팀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결말 또한 그렇다. 인간, 그리고 인간과 기생수로 이뤄진 특별한 존재가 앞으로 기생수와 살아갈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엔딩 신에 등장하는 일본 대세 스타이자 고마츠 나나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스다 마사키의 등장은 박수를 칠 정도로 반갑다. 자신을 기생수에 대해 해박한 르포 기자라고 소개한 그의 등장으로 인해 연상호는 시즌 2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스다 마사키, 그리고 그레이 팀의 활약. 시즌 2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