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간보나?” “해도 너무해” 복지부 ‘재탕’ 브리핑에 의료계 공분

보건복지부 ‘1년 유예’ 가능성 발언에 현장 혼란
의협 합동 기자회견 예고 하루만에 가능성 낮아져
의료계 집단간 분열 조짐에…통일안 마련 요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증원이) 아무리 총선용 카드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잠시나마 기대를 걸었던 게 허탈합니다. "


보건복지부가 8일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의료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열고 “2000명 증원은 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꼼꼼히 검토하고,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도출한 규모”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을 비롯해 의료계가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의대 증원 백지화' 의지가 없음을 피력한 것이다.


'의대 2000명 증원'은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후 8주동안 이어져 온 의정갈등의 핵심 쟁점이었다. 그런데 박 차관이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1년 유예하자"는 의료계 제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내부 검토는 하겠다"고 답하면서 발언의 취지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4.10 총선을 이틀 앞두고 긴장감이 한껏 높아진 시기인 만큼, 일각에서는 '극적 타협'에 대한 기대감도 내놨다. 다만 복지부가 '1년 유예안은 내부 검토된 바 없으며 향후 검토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 담긴 보도설명자료를 두 차례 내고, 긴급 브리핑까지 열어 동일한 내용을 발표하자 이 같은 기대는 허탈감으로 바뀌었다.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의 한 교수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에 들을 돌린 의사들의 표심을 잡을지,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지 고민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의료 정책이) 장기적인 안목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데 대해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 간 면담을 계기로 한발 물러서는 듯한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박 차관 역시 이날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0명 증원) 결정을 바꾸려면 그에 합당한 수준의 과학적 근거 등이 제시되고, 통일된 안이 제시돼야 한다"며 "이와 벗어난 다른 제안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검토하기가 어렵다”고 못박았다.



박민수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이 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의사들에게 공을 넘기겠다는 심산'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의 겸 변호사인 박형욱 단국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기 의료현안협의체에 직접 참석한 당사자로서 의대 증원 규모는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대 증원 관련 논의를) 19차례 진행했다는 복지부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박 교수는 "회의를 충실히 하려면 사전에 자료를 배포하고 참석자들이 미리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복지부는 회의자료를 사전에 제공하기는 커녕 회의가 끝나고 회의자료는 비밀이라며 도로 회수해 갔다"며 "작년 12월 13일 제20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는 미리 회의자료를 보내주지도 않고선 '의대 증원 원칙'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자고 요구해 이의제기를 했다"고도 주장했다.


정부가 의료계 통일된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 속내는 복잡하다. 대학병원부터 종합병원, 의원급에 이르기까지 의료기관 규모는 물론 의대 교수, 봉직의, 병원 경영진, 전공의, 의대생 등 각자 처한 입장이 다르다 보니 이를 중재하기 쉽지 않다. 박 위원장이 전공의들을 대표해 윤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데 대해서도 의사사회 내부에서는 '총선용 이벤트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양측이 '내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두고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대화를 하더라도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방문해 주용덕 천도교 교령대행과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상가상 의사단체가 내부 분열 조짐을 보이면서 극적 합의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대한의사협회가 총선 이후 의대 교수, 전공의, 학생들과의 합동 기자회견을 예고한 지 하루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면서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SNS에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 선생님,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 선생님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을 합의한 적 없다"고 일축했다. 여기에 정식 임기를 한달 가량 남겨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이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이뤄졌다"며 비대위원장직 수행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서울대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을 지낸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미래 의료를 이끌어 갈 전공의, 의대생들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하는데 단일화된 목소리가 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인턴 수련을 포기한 채 의무병으로 입대를 확정한 인원이 적지 않다. 총선 결과와 관계 없이 의료대란을 막을 골든타임이 지나버린 건 아닌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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