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 정국에서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4·10 총선 결과에 따라 남은 임기 3년의 운명이 갈린다.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면 임기 5년 동안 국회 권력을 내준 역대 최초의 정권으로 기록된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한 것은 1987년 개헌 이후 치러진 아홉 번의 총선 중 네 번(13·14·16·20대)이 있지만 대통령 임기를 전부 여소야대 정국에서 끝낸 정권은 없다. 이 때문에 4·10 총선 패배 시 윤석열 정부의 레임덕이 조기에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이 지난 총선 의석수(103석)보다 적은 100석 이하 의석을 얻는다면 윤석열 정부의 모든 정책 수단은 길을 잃게 된다.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하고 야당의 입법을 견제할 수 없게 돼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한다.
특히 대통령실은 끊임없이 특검 위협에 시달릴 것으로 예측된다. 야당은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이태원 특검법’ ‘한동훈 특검법’ 등 대통령을 피의자로 가정한 무수한 특검 발동을 예고하고 있다. 특검에서 대통령의 위법이 발견되면 대통령 탄핵 논의가 촉발될 수 있고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개헌 논의도 불붙을 수 있다.
당정 관계는 사실상 ‘의절’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늘어날 것이고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야당의 경우 이재명 대표 독주 체제가 완성돼 친명(친이재명)계의 당권 독식이 불 보듯 뻔하다. 다만 1973년 유신 정권 이후 한 세력이 200석 이상을 독차지한 적은 없어 여권이 100석 이하의 의석을 갖는 것은 현실 가능성이 낮다.
여권이 지난 총선 의석수보다 비슷하거나 많은 100~120석의 의석을 얻는다 하더라도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약화된다. 21대 국회와 똑같은 여소야대라 하더라도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법사위원장을 양보했던 21대 국회와 달리 철저히 의회 권력을 독차지하려 들 것이 뻔하다.
내각 교체 등을 통해 대통령실이 인적 쇄신 의지를 보여도 야당은 국무총리·감사원장 등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 모든 자리에 원내 1당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패배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여권 전체에 대한 심판”이라며 “한동훈 체제도 붕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권 내 뚜렷한 대권 주자가 없는 만큼 한 위원장이 잠시 정치권을 떠났다 복귀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에 국민의힘은 한 위원장이 복귀할 때까지 새로운 비대위 구성, 조기 전당대회 등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의 경우 ‘비명횡사’ 논란에도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입지는 공고해지고 원내 3당이 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국회 내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이 4년 전보다 20석 이상 많은 121~149석을 얻는다면 용산의 실망감은 여전하겠지만 선거를 이끈 한 위원장은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재목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30석을 얻으면 한동훈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130석을 얻으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반을 얻지 못했지만 의석수를 더 확보한 여당은 야당과 더욱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원장 등 국회 주요 상임위원장을 놓고 원 구성부터 법안, 예산 심사 등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당정 관계는 친윤(친윤석열)과 차기 권력인 친한(친한동훈)계의 대결로 긴장 관계를 연출할 가능성이 크다. 한 위원장은 총선 이후 열리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무리 없이 당 대표에 올라 대선 행보를 시작하며 윤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여당의 과반을 막았지만 이 대표의 입지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독자 과반에 성공한다면 이 대표가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당 장악력을 유지하겠지만 민주당 독자 과반이 깨지면 공천 과정에서 배제된 비명계가 부활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의 역할론도 한층 커질 수 있다.
여권이 151석 이상을 얻는다면 윤석열 정권은 비로소 완벽한 국정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정부의 정책 과제는 원내 1당인 국민의힘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사정 정국에도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당정 주도권은 윤 대통령이 쥐게 되고 한 위원장도 대통령실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야당은 사분오열로 찢어질 운명에 놓인다.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 패배한 이 대표는 대선 주자 반열에서 이탈하고 비명계 위주의 신당 창당 가능성이 제기될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