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3일은 윤석열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을 두고 벌인 노정 갈등이 노정 대화로 극적인 전기를 맞은 날이다.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노동 개혁의 제1 핵심 과제였다. 이 개편안을 추진하던 고용노동부는 특정 업종과 직종만 주 단위 연장 근로시간을 현행보다 더 쓸 수 있는 방안을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간 대화를 통해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 주도로 전 업종의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조정하려던 일명 ‘주 69시간제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4개월 간 실시했던 근로시간제 개편 방향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를 수용했다.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대하던 노동계는 극적으로 화답했다. 작년 6월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당일 전격적으로 경사노위 참여 복귀를 결정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하면서 정부 주도의 노동 개혁이 불투명해졌다. 다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여당의 개혁 과제 입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는 개혁에 대한 국민 공감을 높이는 방안이라는 조언이 나온다.
11일 고용부 등에 따르면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근로시간, 임금, 저출생, 고령화, 계속 고용(정년 연장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개혁과 밀접한 현안을 논의할 3개 산하 위원회의 출범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개혁 중 이처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는 것은 사실상 노동 개혁이 유일하다.
노사정 대화는 노동 개혁은 물론 노정 관계 회복의 변곡점으로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노동계가 원하는 정책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왔다.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유예 법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이들 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동시에 노사정 대화로 다른 대안을 모색을 하는 일종의 투 트랙 전략으로 노동 개혁을 해온 것이다.
집권 여당의 22대 총선 참패로 정부가 반대했던 노동 법안들이 밀려오고 노사정 대화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제 1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 재입법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등 노동계가 원하는 법안 입법을 예고했다. 중대재해법도 민주당이 주도한 법이어서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원하는대로 유예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아졌다. 국회 노동입법의 변수라면 그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해 온 녹색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원외정당이 된다는 점이다. 이날 노사정 대화에 참여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논평을 내고 정부의 국정 방향 전환을 촉구하면서 민주당의 노동 입법에 대한 약속 이행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총선 결과로 노사정 대화를 결부하지 않아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려는 노사정 대화가 성과를 내기까지 변수가 많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부터 시작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노사정 대화의 가늠자로 작용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 개혁과 무관하다. 하지만 심의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사노위처럼 노사가 참여하고 27명의 위원을 정부가 최종 위촉한다. 돌봄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낮은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안들이 최저임금위에서 결정될 경우 노정 갈등이 다시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학자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여당이 원하는 개혁과제를 입법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중심으로 국민에게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해 개혁의 동력을 찾는 게 현재로선 유일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