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청구서' 쏟아지는데…나랏빚, 첫 50% 돌파

작년 1127조 육박…국가채무 '사상 최대'
1년 만에 60조 늘어 50.4%로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1100조 원을 돌파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중도 50%를 넘어섰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예산 청구서’를 연이어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정 파수꾼’으로서 기획재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재부는 2023회계연도 국가 결산 결과 지난해 국가채무(D1)가 전년 대비 59조 4000억 원 증가한 1126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11일 밝혔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빚을 더한 것으로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까지 합친 국가부채(D2)보다는 좁은 개념이다. 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50.4%를 기록해 1년 새 1%포인트 상승했다.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87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GDP에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9%로 전년(5.4%)에 이어 또다시 3%를 넘었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험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안쪽으로 유지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미 2022년(5.4%)과 2023년(3.9%)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내로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GDP 대비 3.9%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는 2025년부터는 GDP의 3% 이내에서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역시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발간한 ‘중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2025~2027년에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5%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2027년 55.2%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해 기재부 예상(53.0%)보다 부정적이었다. 예정처가 기재부보다 의무지출 확대와 총수입 증가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올해 1~2월 관리재정수지도 36조 2000억 원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는 추가적인 세수 펑크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4%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저성장과 저출생·고령화 추세로 재정 건전성이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장률이 이자율을 웃돌았던 과거 고성장 시기와 달리 현재는 성장률로 빚을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나랏빚이 쌓이는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이전 정부에서 코로나19 전후로 재난지원금 등 각종 현금 보조 사업과 각종 사회간접자본(SOC)·복지 사업을 우후죽순으로 늘리면서 재정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재정 건전성 기조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 기간 내건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공약의 경우 13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추가경정예산 요구 역시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야당은 집권 여당에 비해 재정 지출에 대해 책임이 덜한 경향이 있다”며 “야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정부가 국회에 떠밀려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 많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총선 전 6개 정당 254개 지역구 후보자들의 공약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번 총선에서 제시된 개발 공약에 필요한 재원이 최대 563조 원에 달했다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정 건전성 확보와 구조 개혁을 이끌 기재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기재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재정준칙 도입을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재정준칙 도입은 물론이고 경직적으로 고착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배분 방식과 의무지출을 유연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교수는 “SOC 건설과 복지 예산 증액을 억제하고 예비타당성 면제 남발에 대해서도 다시금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생 대책과 여성 경제 활동 활성화, 중소기업 성장사다리 구축처럼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부분은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여야 입장 차가 큰 재정이나 감세 정책 대신 장기 과제 중심으로 저출생 정책과 구조 개혁 동력을 살릴 수 있는 정책 의제를 먼저 제시해야 경제정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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