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앞서 PCR·재생유기농업 도입…"더 좋은 지구 위한 투자죠"[지구용 리포트]

◆ 크리스티나 볼게이지 닥터브로너스 본사 마케팅 부사장
개발단계부터 지속가능성 고민
환경인식 미미했던 2003년부터
100% 재활용 소재 포장재 제작
종이팩 리필에 무포장까지 시도
2018년부터 재생유기농 원료 사용
토양 보호·생물 다양성 유지 기여

크리스티나 볼게이지 닥터브로너스 미국 본사 마케팅 부사장. 사진 제공=닥터브로너스코리아


“20년 앞서 고민하고 10년 앞서 실천하라는 기업 미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달 2일 서울 강남구 닥터브로너스코리아에서 만난 크리스티나 볼게이지(사진) 닥터브로너스 미국 본사 마케팅 부사장은 이 회사가 친환경 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된 동력을 이같이 소개했다. 남들보다 먼저 재활용과 지속 가능한 원료를 고민하고 실제로도 앞서 도입한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닥터브로너스는 독일에서 대대로 이어진 비누 사업을 물려받은 에마누엘 브로너가 1948년 미국에서 설립한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고체·액체 비누와 스킨케어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기업 지속 가능성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교과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관련 규제가 없었을뿐더러 소비자들의 문제 인식은 더더욱 미미했던 2003년부터 이미 주력 제품 포장재를 100%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PCR)로 제작해왔다. 2022년 기준 닥터브로너스의 전체 플라스틱 포장재 중 PCR 비중은 80%에 달한다. 고체 비누 제품의 포장지도 100% 재생 종이와 수용성 잉크로 생산된다.



100% PCR 용기 닥터브로너스의 ‘퓨어 캐스틸 솝(액상 비누)’ 제품. 사진=닥터브로너스코리아

지난해부터는 미국 시장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82% 줄인 종이팩 리필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아예 ‘무포장’도 시도 중이다. 볼게이지 부사장은 “캘리포니아 본사와 가까운 친환경·유기농 매장 10여 곳에서 소비자가 직접 가져온 용기에 닥터브로너스 제품을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리필 스테이션도 시범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 반응이 좋아 캘리포니아 북부로 리필 스테이션을 확대할 예정이고 대형마트 등의 유통 채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2018년 ‘재생유기농업’ 도입으로 이어졌다. 유기농업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배제하는 농업이라면 재생유기농업은 한발 더 나아가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인도·스리랑카·가나 등의 닥터브로너스 농장(총 3300만여 평)에서는 화학비료가 아니라 지렁이 퇴비를 사용한다. 비닐 피복재 대신 수확 후 남은 작물의 잎을 쓴다. 특히 제품 원료로 필요한 농산물 외의 다양한 농산물을 함께 심는 혼농임업으로 토양의 영양분을 보호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생물 다양성을 유지한다. 파타고니아·네스프레소·록시땅 등도 혼농임업으로 생산한 원료를 사용하며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은 혼농임업으로 발생한 탄소배출권을 매입하거나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도 했다.



인도의 닥터브로너스 농장인 ‘파비트라멘테’에서 농부들이 페퍼민트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제공=닥터브로너스코리아

볼게이지 부사장은 “농장에서 생산된 작물은 닥터브로너스가 시세 대비 10%의 프리미엄을 얹어 중개상 없이 직매입하고 이로 인한 수익은 현지인들이 학교나 산부인과 병원 건립 등 사용처를 직접 결정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혼농임업으로 생산한 다양한 작물 중 닥터브로너스 제품 원료로 쓰이지 않는 작물들은 현지 농부들의 2차 수익원이 된다. 올리브·코코넛 과육 등은 닥터브로너스가 제품 원료로 이용하고 코코넛 과즙은 음료 회사에, 코코넛 껍질은 야자 매트(보행 매트) 제조 공장에 따로 판매하는 식이다.


이로 인해 생산 비용이 훨씬 늘어나지는 않을까. 볼게이지 부사장은 “오히려 농약·화학비료나 유전자조작물(GMO) 종자 구입에 쓰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데다 토양의 힘이 유지돼 작물이 더 잘 자란다”며 “비용 상승이 아닌, 더 좋은 제품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닥터브로너스의 방식을 따르기는 어렵다. 볼게이지 부사장 역시 “닥터브로너스가 5대째 외부 투자 없이 운영되는 가족 기업이며 시장점유율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플라스틱과 탄소 감축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고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라고 지적했다.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업들이 살아남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사내 지속 가능성과 혁신(OSI·Operational Sustainability and Innovation) 전담 부서에서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다”면서 “재생유기농업과 포장재까지 외부 인증 기관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신제품이 잘 출시되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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