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탑건’ 촬영 루스벨트함, 전투기 3초만에 시속 249㎞로 솟아올라[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한미일 海훈련 기함 루스벨트함 탑승
‘비행갑판 위 발레리노’ 손짓 신호에
전투기 3초만에 항모서 치솟아올라
캐터펄트 정지했다 250㎞/h 급가속
함장실, TV 韓LG·사운드바 日소니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훈련’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에서 F/A-18E 함재기가 발진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일보

11일 오후 제주 남방 공해 상에서 실시된 한미일 해상 훈련에 참여한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10만t급) 비행갑판.


노란 조끼를 입은 승조원이 손을 들어 올리자 항공 모함이 고막을 찢는 천둥소리를 내며 F/A-18 ‘슈퍼 호넷’ 전투기를 비행갑판 밖으로 쏘아 올렸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려나간 전투기는 허공에서 잠시 왼쪽으로 몸이 기우는 듯하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큰 호를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불과 3초 만에 전투기가 떠나간 비행갑판은 ‘캐터펄트’(catapult·사출장치)가 만들어 낸 매캐한 연기와 수증기로 금세 뒤덮였다. 동시에 엄청난 열기와 몸이 휘청일 정도의 후폭풍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미일 언론사 소속 취재진을 덮쳤다. 취재진이 비행갑판에 머물렀던 약 10분간 5대가 넘는 전투기들이 승조원의 수신호에 맞춰 순식간에 항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한미일 해상훈련을 이끈 건 10만t급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함(CVN-71).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하이라이트인 이·착함 장면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항모다.


미군이 한미일 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략자산이자 ‘기함’(旗艦·지휘함)인 핵 항모를 언론에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합의에 따라 3국은 정례적으로 함께 해상 훈련에 나서고 있는데, 훈련 현장에 한국 취재진을 처음 초청했다.


탑건 찍은, 핵추진 지휘함 루스벨트함에 탄 기자 | 일큐육공

특히 훈련 공개 시점이 눈길을 끈다. 미국은 10일 미일 정상회담, 11일 미일·필리핀 정상회의 등 역내 동맹들로 구성된 소다자 협의체들을 중심으로 한 ‘격자형 구조’로 사실상의 대중 포위망을 구성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한반도 인근에서 한미일 군이 함께 훈련에 나선 건 한미일 안보 협력 역시 이런 격자형 구조의 핵심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미일 취재진은 앞서 일본 오키나와의 카데나 공군기지에서 C-2 그레이하운드 수송기를 타고 항모에 착함했다. 수송기는 굵은 쇠줄인 ‘어레스팅 와이어’(arresting wire)에 물고기처럼 걸려 비행갑판 중간에 멈춰 섰다. 항공기를 항모 밖으로 ‘쏘는’ 역할을 하는 캐터펄트는 짧은 비행갑판에서도 항공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캐터펄트에는 새총이란 뜻도 있다.


루스벨트 함 관계자는 “캐터펄트는 멈춰있던 항공기를 3초 만에 시속 160마일(약 249㎞)로 달리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탑승자는 지구 중력의 3배에 가까운 가속도를 체험하게 된다”고 했다.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훈련’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에서 F/A-18E 함재기가 함상에 대기하고 있다.사진 제공=국방일보

루스벨트 함 갑판에는 F/A-18은 물론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MH-60 시호크 해상작전 헬기 등 함재기들로 빼곡했다. 루즈벨트 함과 같은 니미츠급 항모들은 통상 웬만한 나라 전체의 공군력과 맞먹는 90여 대의 함재기를 싣고 다녀 ‘떠다니는 군사기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루스벨트 함 내부는 기지 하나를 통째로 바다 위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복잡했다. 숙련된 승조원의 안내가 없다면 함 내에서 길을 잃기에 십상일 듯했다. 수송기에서 내려서 함 내로 들어갈 때는 함재기에 장착될 공대공미사일로 보이는 무장들도 눈에 띄었다.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해상훈련’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에서 MH-60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등이 함상에 대기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일보

함장실에 들어서면 항모가 이름을 딴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사진과 흉상이 가득했다. 함장실 벽면의 장식장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인형인 ‘테디 베어’도 놓여 있었다. 함장실에 설치된 TV는 한국의 LG 제품이었고, TV 아래에는 일본제 소니 사운드바가 구비돼 있었다.


함장실 옆방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하키리그(NHL)의 유명 선수들이 직접 사인한 야구 배트와 하키 스틱이 걸려 있는 ‘큰 몽둥이 선반’(big stick rack)이 눈길을 끌었다. 재임 시절 군사력을 강조하며 강경한 대외 정책을 펼쳤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빅 스틱’(실력행사) 외교 기조를 미국의 대표 프로 스포츠는 물론 궁극의 전략 자산인 핵 항모와도 연관 지은 셈이다.


루스벨트 함이 소속된 미 제9 항모강습단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단장(해군 준장)은 한미일 취재진과 만나 “이 지역의 위대한 동맹인 한국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일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우리가 동맹을 직접 만날 기회는 위기의 시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번 훈련이 북·중에 대한 경고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는 "(사전에) 잘 조율된 공해 상에서의 정례적인 작전"이라며 말을 아꼈다.



11일 진행된 한미일 해상훈련에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미 제9항모강습단장(준장)이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71)의 함장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방일보

12일 한국 해군에 따르면 이번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 해상훈련은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따라 한미일 국방당국이 공동으로 수립한 다년간의 3자 훈련계획을 이행하는 차원이다.


훈련은 11∼12일 이틀간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실시했다. 훈련에는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과 한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 등 한미일 함정 6척이 참가했다. 미 항공모함이 참여한 한미일 해상 훈련은 지난 1월 중순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실시된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한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11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한미일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쪽부터 우리군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Theodore Roosevelt),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함(Ariake). 사진 제공=해군

해군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미일의 공동 대응능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훈련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미일 함정들은 북한의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수중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한 대잠전훈련을 실시했다. 또 북한의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 해상운송을 차단하기 위한 훈련과 조난선박 발생 때 구조절차 숙달을 위해 수색·구조훈련도 병행했다.


훈련에 참가한 백준철 서애류성룡함 함장(대령)은 “이번 훈련은 3국 참가전력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WMD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과 조난선박에 대한 인도적 지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였다”고 밝혔다.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제주 남방)=국방부 공동취재단·이현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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