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연금공론화위원회가 연금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개최한 시민참여형 공론화 과정에서는 연금 개혁 방안을 두고 소득안정론과 재정안정론이 맞섰다. 소득안정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미래 세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소득대체율 인상이 기금 재정 악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금 개혁은 재정 지속 가능성 확보에 방점을 찍고 노인 빈곤 문제는 복지 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 소득에 비해 노후에 수령하는 연금액의 비율이다. 2024년 우리나라의 소득대체율은 42%로 매년 0.5%포인트씩 줄어 2028년에는 40%로 고정된다. 소득대체율에 따라 국민연금 지출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연금 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소득대체율은 항상 화두에 올랐다.
소득안정론 측인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진행된 ‘연금개혁 시민 숙의 토론회’에서 “우리나라는 그동안 계속 소득대체율을 낮춰왔다”며 “그러다 보니 지금 구조를 유지하면 2080년에도 노인 빈곤율이 3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첫날 소득안정론 발제자로 나선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이대로라면 청년 세대가 은퇴할 때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와 주거비를 줄이면 국민들이 보험료를 추가로 납부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제시했다.
소득안정론에서는 국고를 투입하면 국민연금이 추계와 달리 장기 지속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상위 20%가 종합소득세 총액의 93.4%를 납부한다. 연령별로 보면 40대 이상의 납부액이 전체의 89.9%”라며 “국민연금에 재정을 지원하면 계층 간, 세대 간 소득재분배 효과가 강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 역시 “경제성장률 연평균 2.5%만 유지해도 한 세대가 지나면 국내총생산(GDP)이 2배가 된다”며 “소득대체율 50%는 선진국 대한민국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꼭 국민연금 보험료를 임금에만 부과할 필요도 없다”며 “자산이나 비임금 소득에도 보험료를 부과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재정 부담과 보험료 인상을 쏙 뺀 반쪽짜리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릴 때 재정 전망이 변하지 않으려면 보험료율을 5%포인트 올려야 한다”며 “1안이 채택되면 연금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은 더욱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개혁이 지연되면 매년 30조 8000억 원의 부채가 더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기금 규모가 1000조 원이 넘고 경제활동인구가 정점인 지금 보험료율만 올려 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금공론화위에 따르면 1안을 채택할 경우 2035년에 태어나는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36.1%에 달했다. 반면 2안을 선택하면 이보다 4%포인트 낮은 32.1%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국민연금에 나랏돈을 지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규모 재정 투입을 위해서는 다른 항목의 예산 감축이 없을 경우 증세가 필요하다. 국민 입장에서는 보험료 추가 납부나 세금 인상은 같은 얘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득대체율 인상 측에서는 이 같은 부분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87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급 세수 펑크로 세수가 적게 걷힌 탓이다. 석 교수는 “고령인구가 늘면 돌봄·의료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며 “앞으로 재정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급속히 늘 텐데 무작정 국고에 기댈 수 없다”고 짚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역시 “지난해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이 36조 원이었는데 기초연금 예산이 23조 원이었다”며 “결코 적지 않은 재원이 이미 복지에 투입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30년간 평균 2.5% 수준의 성장률 달성도 쉽지는 않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연평균 2.5% 성장이 장밋빛 전망이라고 비판했다. 이 연구위원은 “GDP 성장률이 예전 같을 수 없는 형편”이라며 “구체적인 근거 없이 재정추계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변수가 긍정적일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5차 재정추계 당시 사용한 시기별 실질경제성장률은 0.2~1.9%대였다. 경제활동인구 감소가 본격화될 경우 1% 이하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소득안정론 측에서는 수십년 뒤 기금이 고갈된다는 추계를 과도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언론에서 고갈 시점을 많이 다루다 보니 마치 정해진 미래처럼 여겨진다”며 “재정추계 결과는 하나의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오 정책위원장은 “재정추계는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