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일 베트남 호찌민 타오디엔에 문을 연 국제 유치원 ‘앨리스’. 베트남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곳이지만 어쩐지 익숙한 분위기다. ‘눈높이 한글똑똑’, ‘트니트니’, ‘플래뮤’, ‘퍼니언스’, ‘소리보따리’, ‘브레인숲’ 등 한국 학부모들이 익히 알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유치원에서 진행된다. 한국 교육기업 대교(019680)가 한국의 누리과정까지 포함해 운영하는 이른바 한국식 미취학 사교육 학원이기 때문이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베트남 엄마들의 요구를 반영해 프로그램을 결정했으며, 운동회, 전시회,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부대 행사까지 제공할 예정이라는 게 대교 측 설명이다. 대교 측은 “베트남 시장에서 성과가 나면 동남아 다른 나라로도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반도체·화장품 등 공산품에 이어 음악·드라마·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까지 ‘수출 효자’ 상품으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최근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유치원부터 요양 시설, 매장 관리와 인플루언서 마케팅까지 다양한 ‘K스타일’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차세대 수출 상품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기존 수출 시장을 이끌던 전통 제조업이 중국에 추월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신규 상품들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생활 양식을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유아동 교육부터 실버 산업, 인공지능(AI) 기반 프로그램까지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글로벌 시장에 전파하고 있다. 에듀테크 기업 프레도는 국내 디지털 학습 교구 업계 최초로 베트남에 유초등 학습 프로그램인 ‘플레도 AI’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플레도 AI는 1만 여개 이상의 학습 콘텐츠가 탑재돼 영어·수학부터 코딩·챗GPT·경제까지 폭넓은 학습 범위를 갖춘 게 특징이다. 여기에 한국어 콘텐츠가 포함돼 있는 만큼 베트남 어린이를 대상으로 말하기 대회 등을 개최해 한글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겠다는 포부다.
중남미의 초등학교에 기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K에듀테크 스타트업도 있다. 에누마는 미주 최대 지역개발 금융기구인 미주개발은행(IDB)의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해 올 3월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 100여 곳에 자체 개발한 기초 교육 프로그램 ‘에누마스쿨’을 제공해 초등 교육 강화 및 학습 격차 해소에 기여한다는 목표다. 에누마는 현재 파나마시티 지역 초등학교에도 에누마스쿨을 공급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국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니어 산업도 새로운 수출 품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몽골 울란바토르 시의회는 데이케어센터 설립을 앞두고 한국의 선진 시스템을 체험하기 위해 요양 서비스 스타트업 케어링을 찾았다. 이들은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케어링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해 첨단 교구를 활용한 스마트 인지 및 재활 프로그램과 전문 기구를 활용한 신체 활동, 정서 안정을 위한 단체활동 등을 직접 경험하며 요양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특히 고령화로 유명한 일본이 아닌 한국을 방문해 국내 요양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의 소매업과 광고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AI 리테일테크 스타트업 딥핑소스는 일본 aix와 손잡고 ‘매장케어링 솔루션’을 현지에 출시했다. 이 솔루션은 AI를 기반으로 매대의 빈 곳과 흐트러짐 등 정돈이 필요한 부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피처링은 올 2월 일본 종합광고대행사 ‘플래그’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식 인플루언서 마케팅 전략을 현지에 전수할 계획이다.
한국 라이프 스타일과 연관된 유무형 상품의 수출 사례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한류 인기 속에 한국 전반에 대한 관심이 세계 각지에서 증가한 덕분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그동안 전통 제조업을 시작으로 첨단 분야까지 수출 시장이 확대됐지만 사실상 품목이 고정돼 있는 느낌이 있었다”며 “몇몇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을 당하며 새로운 수출 품목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가운데 문화 콘텐츠부터 교육 등 생활 양식까지 수출 분야가 넓어진다면 반도체 이후 시장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전통적인 수출 상품 뿐만 아니라 신규 품목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이들이 해외시장에 체계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