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로 내수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에 경제성장률 2% 달성이 위태로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할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제기된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5일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아니었다면 반도체 경기회복에 힘입어 2%대 성장률이 가능했을 것”이라면서도 “두 나라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경우 2%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올 1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제시했다.
경제학자들이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물가다.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급등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8.6원 오른 1384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380원 대를 기록한 것은 2022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엔화 가치도 급락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준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53.95엔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53엔 후반 수준으로 치솟은 것은 1990년 6월 이후 약 34년 만에 처음이다.
이 때문에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이상 기록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당초 정부는 연간 유가가 배럴당 81달러를 유지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내수 역시 좋지 않은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고물가에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2%포인트 높은 미국에서도 연 1회 인하는 물론이고 금리 동결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고용은 악화될 수 있다. 강 교수는 “물가 상승으로 고용 창출 여력이 높은 건설업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온다. 강 교수는 “전쟁으로 전 세계 물가가 오른다면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인 한국 입장에서는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글로벌 상황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중동 사태로 당분간 글로벌 위험회피(risk-off) 흐름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국내외 성장·물가 등 실물경제의 불확실성도 확대될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식료품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근원물가가 안정되면 적절한 타이밍에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