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코스피 및 코스닥지수가 2% 넘게 급락하고 국고채 금리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것은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중동 지역 리스크가 원·달러 환율 급등을 불렀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주식 현·선물을 앞다퉈 내다팔면서 추가 하락에 적극적으로 베팅하는 양상을 보인 것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가 당분간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것으로 보면서도 미국이 올해 대선을 앞두고 외교적 억제력을 발휘해 악재 확산을 조기 차단할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2.28%, 2.30% 하락한 데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컸다. 외국인과 기관은 이날 코스피를 각각 2743억 원, 2934억 원, 코스닥을 각각 1565억 원, 100억 원씩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코스피200 선물도 1조 원 이상 내다팔았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음식료품(0.14%)을 제외한 모든 업종이 하락세를 보였다. 의료정밀이 4.27% 떨어진 것을 비롯해 운수창고(-3.20%), 기계(-3.22%), 전기·전자(-3.14%)의 낙폭이 특히 컸다. 금융업(-2.23%), 보험(-2.04%), 철강·금속(-2.20%), 증권(-2.05%) 등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수혜주로 꼽혔던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업종들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절대다수가 떨어졌다. 삼성전자(005930)가 2.68% 내린 것을 포함해 SK하이닉스(000660)(-4.84%), LG화학(051910)(-3.17%), KB금융(105560)(-2.72%),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2.56%), 삼성SDI(006400)(1.90%) 등이 줄줄이 내렸다. SK하이닉스는 이달 3일 이후 처음으로 17만 원대로 내려앉았고 삼성전자도 장중 7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현대차(005380)가 올랐다지만 상승 폭은 0.21%로 미미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이오테크닉스(039030)(-4.62%), 리노공업(058470)(-6.09%), 동진쎄미켐(005290)(-4.06%) 등 상당수의 시총 상위주가 하락세를 보였다.
채권 가격도 일제히 연중 최저치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2.9bp(1bp는 0.01%포인트) 상승한 연 3.469%에 장을 마쳐 이달 11일의 3.466%를 뛰어넘는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5년물과 10년물, 20년물 금리도 각각 3.8bp, 5.7bp, 3.9bp 오른 연 3.532%, 3.618%, 3.522%로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동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앞으로 이 이슈가 한동안 금리와 함께 증시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점쳤다. 관련 사안이 어느 정도 해소돼야만 주식시장이 재반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국고채 3년물의 금리가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인 3.5%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투자할 때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아직 확전 양상을 보이지 않고 있는 데다 대선을 앞둔 미국이 곧장 외교적 관리에 나설 수 있어 악재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중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5.3%를 기록한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업종별로는 단기적으로 달러화 강세를 감안한 수출주, 무기 수주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산주에 주목해볼 만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밸류업 관련주의 경우 시장의 관심이 정부 정책에서 거시 환경으로 옮아간 까닭에 주가 상승에 보탬이 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웅찬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강경 진압을 이어가면서 세계의 민심을 잃자 미국도 지난달부터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며 “달러 강세는 시간을 두고 수출주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병열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까지 금융시장은 국지전 시나리오를 반영한 듯하다”며 “미국이 대선 정국을 맞았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외교적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