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들 곁으로…‘6월 항쟁 불씨’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씨 별세

17일 오후 서울 강동구 강동성심병원에 고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인 정차순 여사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내 아들이 대체 왜 죽었소? 못돼서 죽었소? 똑똑하면 다 못된 거요?"


전두환 정권 시절 경찰의 고문으로 숨져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故)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붙들고 이 같은 독백을 남긴 박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씨가 1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1세.


박종철기념사업회와 유족에 따르면 정 씨는 이날 오전 5시 20분께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정씨는 박 열사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박정기 씨가 2018년 먼저 세상을 등진 후 부산의 자택에서 홀로 지내다 건강이 악화해 2019년 서울로 올라와 요양병원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열사의 형인 박종부(66)씨는 연합뉴스에 "어머니가 특별한 유언 없이 빙긋이 웃으시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며 "아들 옆으로 간다고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1987년 경찰이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고 한 발언이다. 이후 공안당국의 조직적인 사건·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과 경찰의 물고문이 드러나면서 6·10 항쟁의 ‘불씨’가 됐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박 열사는 중이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



1987년 정차순씨와 누나 박은숙씨가 부산 괴정동 사리암에서 열린 가족 불공에 앞서 울부짖으며 타종하고 있다. 사진 제공=부산일보

1987년 2월 7일 시민사회 주도로 진행된 국민추도대회에 참석하려다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정차순씨는 부산 사리암에서 박 열사 누나 박은숙씨와 추도 타종을 했다.


아들과 동생을 잃은 슬픔과 통분을 삼킨 채 울부짖으며 종을 치는 모녀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들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며 "종철아, 잘 가거래이, 아부지는 아무런 할 말이 없데이"라는 말을 남긴 아버지 박정기씨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이끌며 정씨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정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남편 박씨과 함께 매해 박 열사의 추모제에 참석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은 이날 "(정씨는) 막내아들 사망 이후 가족들과 함께 아들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애쓰셨고,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의 메카로 거듭나기를 염원해 오셨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됐다. 정씨의 유족으로는 박 열사의 형 종부(66)씨와 누나 은숙(62)씨 등이 있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고인의 유해는 서울시립승화원을 거쳐 모란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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