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에 그간 시장 상승을 주도해온 미국 대형 기술주의 주가를 역방향으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 증시에 상장한다. 1년 이상 계속된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된 데다 미국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리스크 헤지 수요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하반기 비슷한 콘셉트의 상품이 시장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가운데 이번에 출시되는 빅테크 인버스 상품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1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은 다음 달 중 미국의 대형 기술주 10개를 편입한 ‘SOL 미국테크TOP10’ ETF를 정방향과 역방향 상품으로 각각 출시할 계획이다. 기초지수는 ‘솔랙티브US 테크톱10 커스텀지수’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엔비디아·알파벳·아마존·메타·테슬라 등 미국의 주요 대형 기술주 10개를 고루 담았다. 비중은 MS가 20.1%로 가장 높고 애플 19.2%, 엔비디아 14.9%, 알파벳 13.9%, 아마존 12.2% 등 순이다.
미국의 대형 기술주들은 2009년 이후 주식시장 상승세를 주도했다. 2009~2018년에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성장주가 상승세의 중심이었고 2021~2022년에는 전기차·메타버스 등 신기술 산업을 이끌었다. 또 지난해부터는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산업 테마와 궤를 같이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렸다.
실제 SOL 미국테크TOP10 ETF와 유사한 콘셉트로 기존에 상장돼 있는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ETF 순자산은 이날 기준 2조 627억 원으로 미국에 투자하는 국내 주식형 ETF 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100 등 대표지수 ETF를 제외하면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ETF(2조 2766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해당 지수의 역방향을 추종하는 인버스 ETF는 올 들어 처음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9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최초로 비슷한 콘셉트의 ‘ACE미국빅테크TOP7 Plus인버스(합성)’를 상장했지만 이후에도 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이날 기준 순자산은 44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난 현시점에서는 미국 빅테크 주가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진 데 따른 헤지 수요가 지난해보다 커졌다는 게 신한운용의 판단이다. 실제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의 최근 1년 수익률은 63.74%에 이른다. 여기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6일(현지 시간) 물가 목표치에 도달하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는 발언을 해 금리 인하 기대감이 많이 사라졌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까지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지속적인 기술주 상승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신한자산운용 관계자는 “국내시장에 S&P 500, 나스닥 이외 미국 대표지수로서 미국테크TOP10이 자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인버스 ETF를 통해 헤지를 설정하고 싶은 단기 트레이딩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운용은 정방향·역방향 상품 모두 0.05%의 업계 최저 수준 보수를 제시해 투자자를 유인할 계획이다.
인버스 ETF에 대한 관심은 지난해 2차전지 업종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KB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 업계 최초로 ‘KBSTAR 2차전지 TOP10 인버스 iSelect’ ETF를 상장했는데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인버스 상품이 2차전지 종목 하락을 부채질할 것이라며 KB금융 계좌를 해지할 정도로 반발이 컸다. 하지만 이후 실제 2차전지 업종이 하락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상품을 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자산운용 업계 내에서도 미국 빅테크 인버스 상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아직까지 신한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외 운용사들은 빅테크 인버스 출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빅테크는 2차전지와는 달리 시기마다 테마는 손바꿈이 되지만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며 “테크톱10 기업들이 현재 대부분 AI 기반이라 일시적 헤지 수요는 있겠지만 성장 모멘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