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두달…환자들 노심초사] "한달 반만에 간신히 예약했는데…암수술 미뤄질까 잠 못자"

■의료공백 두 달…환자 고통 가중
의정간 협상없이 샅바싸움 지속
상경 환자 진료 갑자기 취소되기도
다음주 교수 사직 효력 발생 변수
의사단체 "일대일로 대화" 고수
예고된 의료개혁특위에도 회의론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암병동 대기석에 환자들이 앉아 있다.사진=장형임 기자


“한 달 반 만에 겨우 잡은 수술이 다음 달에 진행될 예정인데 혹여 취소되거나 미뤄질까 걱정입니다.”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암병동에서 만난 40대 남매는 최근 위암 진단을 받은 70대 노모의 수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노모와 함께 충북 청주에서 올라왔다는 A 씨는 “아예 전화 연결부터 어려울 정도로 첫 예약을 받는 게 정말 힘들었다”며 “의사 집단을 건드려서 피해보는 것은 소시민들”이라고 하소연했다.


총선을 치른 지 1주일이 지났음에도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의료 공백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자 치료가 시급한 중환자들은 의정이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미리 예약된 수술이나 진료 일정이 취소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80대 남편의 보호자로 온 이 모 씨는 “원래 폐와 안과 등 총 3개 과에 검사 및 진료 예약을 했는데 갑자기 안과 진료가 취소됐다”고 말했다.


다음 주 예정된 ‘교수 사직서 효력 발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47) 씨는 “교수 사직서 효력 발생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걱정이 들었다”며 “집단 사직의 여파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의대 교수들은 지난달 25일 집단 사직을 결의했는데 고용 기간 약정이 없는 근로자는 사직 의사를 밝힌 후로부터 1개월이 지나면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 이달 말부터 의대 교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길어지는 의료 공백 사태로 병원과 환자들이 보는 피해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지만 사태의 핵심 주체들은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지루한 샅바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대화를 계속하겠다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최소 규모’로 칭한 기조를, 의료계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전제 조건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는 탓이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평행선은 두 달 넘게 접점이 생기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이달 1일 대국민 담화에서 의료계에 과학적·합리적이고 통일된 의견을 달라고 요청하고 전공의들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과 전공의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사태 발생 이후 처음으로 만나며 기대가 현실이 될지 주목됐으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을 따름이었다.


정부는 이날에도 의료 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강조하며 흔들림 없이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에서 “의료 개혁은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고 미래 의료 수요에 대비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 개혁에 대해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의료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이라며 “그간 의사 단체에서 제안한 개선 방안과 다르지 않으므로 대화의 자리에 나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함께 논의해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물러서지 않을 뿐 아니라 대화 형태도 정부와 ‘1대1’로 이뤄져야 한다며 부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이다. 의대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새로 논의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꿔달라”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의료계 단일안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였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정부가 의료계뿐 아니라 노동계, 환자 단체, 시민 단체 추천 전문가들로 꾸려 다음 주 공식 출범할 계획인 의료개혁특위에 대해서도 의사 단체들은 회의적 입장만 보일 뿐이다. 임현택 차기 의협 회장 당선인은 “사회적 협의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협의체는 의료계와 정부가 1대1로 대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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