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또다시 추경 요구…獨·日 부채 줄이는데 韓만 역주행

◆ 총선 8일만에 '현금지원' 등 최소 14.3조 요구
정부부채 비중 60% 육박 재정부담
'감세로 기업활력 제고' 동력 잃어
與 "미래세대에 큰 짐 될것" 반발


22대 국회에서 175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전 국민 25만 원 현금지원’ 등을 추진하기 위해 14조 29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추가로 편성하자는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9년 우리나라의 정부부채가 60%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등 재정 여력이 녹록치 않은 상황 속에서 거대 여당의 포퓰리즘 청구서를 받아든 기획재정부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야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처음 행사했던 양곡관리법의 후속 법률안도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정부가 초과 쌀 생산분을 의무 매입해주는 양곡관리법에는 연간 최대 1조 4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 4월 총선의 민심”이라며 “민생회복 긴급조치를 즉각 실행하고 추경 편성에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할 때”라고 주장했다. 홍 원내대표는 “정부는 낡은 낙수효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경제 정책에 임해 달라”며 “정부 재정 정책에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원장 역시 “지금 대한민국은 고물가, 고유가, 고환율로 민생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민주당이 제안하는 민생회복 긴급조치에 대한 정부 여당의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야당의 긴급조치안에는 이 대표의 전 국민 25만원 현금지원 외에도 소상공인 대출·이자·에너지 비용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들이 포함돼있다.


문제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기에 재정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2023년 우리나라 국가채무(D1)는 1126조 7000억 원으로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겼다. 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로 나랏빚이 60조 원 가까이 늘어난 결과다. IMF가 17일(현지시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해 GDP대비 정부부채(D2) 비중은 55.2%로 2022년에 비해 1.4%포인트 늘었다. IM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중은 앞으로 꾸준히 늘어 2029년에는 59.4%가 될 전망이다. 반면 최근 재정 건전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독일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2023년 64.3%에서 2029년 57.7%로 떨어져 우리나라보다 낮아지 것으로 추계됐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주당의 안만 갖고 ‘원샷 추경’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라며 “이제야 2분기 초인데 벌써 추경을 감행하면 재정 건전성에 분명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익표(오른쪽 첫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제시한 ‘민생 회복 긴급 조치’를 시행하는 데는 최소 14조 2900억 원이 필요하다. 올해 예산안대로 세수가 걷힌다고 가정해도 통합재정수지가 44조 4000억 원 적자를 기록할 예정이어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5건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야당은 5월 중 열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직회부 법안과 함께 채상병특검법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다.


이 정책위원장은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주당 민생 회복 긴급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이 대표가 주장한대로 1인당 25만 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기초수급대상자, 차상위 계층, 한부모가정 등 취약 계층에게는 1인당 10만 원씩 추가로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여기에만 약 13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대출 예산 9000억 원 △소상공인 에너지 비용 지원 예산 3000억 원 △저신용 저소득자 대상 햇살론 출연금 900억 원을 각각 증액하자는 구상도 포함됐다. 총 14조 2900억 원 규모다. 민주당은 다른 공약들도 입법을 통해 현실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야당발 공약 청구서 비용은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헌승(오른쪽)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전국위원회에서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로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은 땜질식 처방”이라며 날을 세웠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무책임한 지출로 인한 재정적자는 미래 세대의 짐이 될 것이 뻔하다”며 “현실적인 경제 회복 정책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정부도 야당의 추경 주장에 난색을 표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저출생 고령화로 국가 재정은 더욱 악화할 요소가 많고 내년 갚아야 할 국고채가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긴 상황”이라며 “추경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현금 지원식 정책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잡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현금 지급성 정책을 쓰면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게다가 지금 재정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1인당 25만 원씩 배분한다고 해서 소비 진작 효과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재정이 있다면 차라리 미래 먹거리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선거 직후 재정지출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IMF는 17일(현지 시간) 발표한 ‘재정 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에서 “선거가 있는 해는 그렇지 않은 해보다 국내총생산(GDP)의 0.4%포인트까지 적자 예측치를 초과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특히 올해는 (88개국이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커다란 불확실성 속에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IMF는 “재정 정책과 정치 사이의 연결 고리를 고려하면 정치적 담론이 공공 지출을 늘리게 될 것”이라며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시기 늘어난 재정 지출을 점진적으로 거둬들이는 등 재정 완충 장치를 재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2029년까지 캐나다·독일·일본 등 주요국의 정부 부채가 개선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꾸준히 악화되는 것으로 전망됐다. IMF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정부 부채 비중은 55.2%로 2015년(40.8%)에 비해 14.4%포인트 증가했다. 37개국 평균 증가폭(7.8%포인트)의 1.85배에 달하는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던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정부 부채 비중이 42.1%에서 53.8%로 11.7%포인트 급증한 탓으로 풀이된다. IMF는 우리나라 정부 부채가 꾸준히 증가해 2029년에는 59.4%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과 달리 주요 선진국들은 정부 부채가 줄어드는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은 2028년 한국보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낮아진다. 한국과 수치가 역전되는 것이다. 캐나다의 2023년 정부 부채는 GDP 대비 107.1%지만 2029년에는 95.4%로 줄어든다. 한때 심각한 재정적자로 골머리를 앓았던 그리스와 포르투갈도 6년 내에 각각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중이 30%포인트, 22.1%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추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중도 252.4%에서 251.7%로 소폭 완화된다. 미국의 경우 122.1%에서 133.9%로 증가 폭이 크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이어서 거시경제에 주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통상 정부가 산출·관리하는 부채는 국가채무(D1), 정부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로 구분된다. D1은 중앙·지방정부를 더해 구한다. 여기에 비영리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하면 D2가 된다. IMF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국제기구는 국가간 정부 부채 수준을 비교할 때 D2를 사용하고 있다. D2에 비금융공기업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D3가 된다. 기재부가 내놓은 공식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2년 정부부채는 1157조 2000억 원으로 GDP대비 약 53.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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