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본고장 밀라노에 삼성·LG 뜬 이유? …30조 '이 시장' 잡으려고 [줌 컴퍼니]

유로쿠치나 전시장에서 비스포크 AI와 유럽 빌트인 신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경. 사진제공=삼성전자

‘디자인 본고장’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최근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가 인공지능(AI) 빌트인 가전으로 맞붙었다. 16일(이하 현지 시간)부터 21일까지 진행되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양 사가 참여 규모를 나란히 늘리며 힘을 준 것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전 세계 2300여 개 기업이 참가하는 글로벌 최대의 디자인·가구 박람회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참여한 전시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한 프로그램으로 격년마다 열리는 주방 가전·가구 전시회 '유로쿠치나'다. 가구들과 결합한 주방 빌트인 가전들을 선보이며 빌트인 시장 점유율 늘리기에 나선 셈이다.



AI 입은 빌트인…스마트폰으로 가전 켜고 AI가 요리 현황 보고


삼성전자가 이탈리아 밀라노 유로쿠치나에서 이달 유럽에서 출시한 '빌트인 와이드 냉장고'를 선보였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유럽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실제 집안처럼 체험존을 구성하고 AI홈과 빅스비를 통해 연결 기기들을 이용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이탈리아의 대표 셰프인 안드레아 버튼이 삼성 비스포크 제품들을 사용해 관람객들에게 생선찜 요리를 선보이는 쿠킹쇼를 열기도 했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프리미엄 빌트인 신제품도 전시했다. 이달 유럽에서 출시한 '빌트인 와이드(Wide) BMF(상냉장∙하냉동) 냉장고'는 삼성전자의 빌트인 냉장고 라인업 중 최초의 와이드 모델이다. 와이드 빌트인 시장 수요가 높아지는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해 기존 모델 대비 91리터 더 커진 398리터 내부 용량을 갖췄다.


3분기 출시를 앞둔 빌트인 식기세척기 신제품은 하단의 걸레받이를 절단하지 않고 주방 가구에 알맞는 '키친핏 슬라이딩 도어'를 탑재했다. 에너지 효율에 민감한 유럽 소비자들을 겨냥해 에너지효율 A·B등급을 획득한 것도 장점이다.


휴대전화가 가전 리모컨 역할을 하는 '퀵 컨트롤' 기능도 선보였다. 스마트폰과 가전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리모컨 기능이 켜진다. 빅스비를 이용해 사용자가 음성 명령을 말하면 다른 기기에 전달하기도 한다. 오는 7월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의 생성형 AI가 빅스비에 도입되면,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음성 제어도 가능해질 예정이다.


정지은 삼성전자 DA(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삼성전자는 3억 명 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어 AI와 연결성 면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LG전자 모델이 고메 AI 오븐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제공=LG전자

LG전자는 △AI 끓음 알림 및 조리기구 추적 기능을 탑재한 프리존 인덕션 △AI 카메라 내장 오븐 등을 공개했다. 초프리미엄 빌트인 제품군에 AI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프리존 인덕션은 AI가 음식의 끓는 정도를 파악하고 예측해 조리물이 끓는 것을 막아주는 '끓음 알림' 기능을 갖췄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오븐 신제품은 오븐 내부 AI 카메라가 재료를 식별해 130개 이상의 다양한 요리법을 추천할 수 있다.



삼성 “애플과 겨뤄볼 만”…LG는 “3년 내 빌트인 매출 1조” 선언


한종희(왼쪽 세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과 노태문(왼쪽) 삼성전자 사장이 1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건 가전 수요 정체에도 불구하고 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빌트인 가전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212억 달러(약 29조 5422억 원)로, 전 세계 빌트인 시장 중 42%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은 한 번 진입에 성공하면 거래 규모가 크고 지속 기간도 길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양대 가전사의 사업 구조는 대부분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분야에 쏠려있다. 유럽 각국마다 요구되는 가전 사양 등이 제각각인 데다 지역별 영업망이 필수적인 만큼 높은 진입 장벽을 아직 완전히 넘지는 못한 것이다. 독일 보쉬나 지멘스 등 기존 강자들의 아성도 여전하다.


국내 가전 업계는 최근 가전 사업에도 불어든 AI 붐을 반전의 기회로 보고 있다. 적극적으로 AI 가전 흐름을 주도하는 기세를 몰아 빌트인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 창출에 나선 것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DX사업부문장(부회장)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기자들과 만나 AI 가전 흐름과 관련해 “저희 회사만큼 수많은 제품을 내놓는 곳이 없다”며 “제품들을 연결만 잘한다면 애플과도 한 번 겨뤄볼 만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비스포크 AI 미디어 데이에서 연내라고 언급한 LLM 적용 빅스비 출시 시점을 오는 7월로 확정하기도 했다.


한 부회장은 “예를 들어 지금 가전이 ‘에어컨 몇 도로 맞춰줘’ 정도의 명령을 수행했다면 앞으로는 ‘나 외출할 거야’라고 말한다면 제품을 알아서 꺼주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올해 나온 제품은 바로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스탠딩 미팅을 진행하며 “AI 기술력과 차별화된 제품력, 디자인을 앞세워 3년 내 글로벌 빌트인 가전 사업에서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이 1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디자인 전시회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LG 빌트인 가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LG전자


M&A 통해 몸집 불린 中가전, 유럽 빌트인서도 약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위크·유로쿠치나 2024'에 참여한 중국 하이얼의 부스에서 쿠킹쇼가 진행되고 있다. 노우리 기자

다만 이 시장에서 중국 가전사가 유럽 전통 강호를 인수하며 약진하고 있는 점은 국내 가전업계로선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 하이얼은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에서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와 이탈리아 가전 기업 캔디 등을 인수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LG전자 부스 옆에 캔디 전시관을 조성해 중저가 이미지 벗기에 강수를 띄웠다. 냉장고나 오븐을 전용앱(hOn)과 연동하는 방식의 제품이 대표 전시 품목이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냉장고 정전 알림을 받거나 앱이 제안한 요리법으로 조리를 하는 식이다.


류 사장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는 중국의 하이얼을 꼽으며 “과거 LG가 성공했던 방정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디자인과 기술력의 약점을 빠른 속도로 극복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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