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 해마다 4만 명이 넘는다. 벌금을 소득에 따라 내거나, 나눠 내거나, 돈을 구할 시간을 더 주거나, 사회에서 노역을 하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
18일 세상을 떠난 홍세화 사회운동가가 은행장으로 있던 ‘장발장은행’의 소개글이다. 장발장은행은 홍세화 운동가가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세상에 던진 똘레랑스(관용)의 현실적 운동을 묻고 있다.
2015년 출범한 이 은행 이름이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장발장을 돕기 위한 은행이어서다. 장발장은 생계를 위해 빵을 훔쳐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장발장은행의 대출자는 벌금형 선고를 받고 생계 곤란 등으로 벌금을 내지 못하거나 벌금 미납자다. 소년소녀가장, 미성년자, 기초생활보장법 상 수급자, 차상위 계층은 우선 대출 심사 대상이다. 시민 후원금이 대출 재원이다보니 은행은 대출 심사기구를 만들었다. 대출 금액은 상환 이자 없이 최대 300만 원이다. 단 성범죄 등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자는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장발장은행은 1318명의 ‘장발장’들에게 23억455만5000원 규모 대출 지원을 했다. 가장 최근 114차 대출 심사 결과 21명이 4770만 원을 빌렸다. 이 중 가장 어린 장발장은 1998년생이다. 지난달 25일까지 남은 대출 재원은 16억3548만 5282원이다.
장발장은행은 빨리 문을 닫는 게 목표다. 재산과 소득에 따라 벌금을 내는 등 우리 사회 장발장을 줄이는 제도가 마련되면 은행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발장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작년 벌금을 내지 못해 감독에 갇힌 이들은 약 5만명이다.
장발장은행은 홍 은행장이 강조했던 똘레랑스가 이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 속 실천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작년 1월 12일 한겨레에 기명 칼럼에서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썼다.
장발장은행은 홍 은행장을 ‘누구보다 진지하고 치열한 운동가였다’고 기억한다. 추모글에서 ‘홍세화 선생은 돈도 없는 사람이 은행장까지 하게 됐다며 웃으면서 말하면서도 열심이었다, 송구하게도 홍 선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평한 형벌을 위한 제도 개혁은 숙제로 남아 있다, 그는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을 물리치지 않았다, 귀한 분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