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개인 컵)를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습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 매우 소중합니다. 각 가정에서도 쓰레기 분리 배출을 열심히 잘하고요. 하지만 이런 선의의 행동만으로는 환경문제 대응에 한계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다시 사용하는 자원 순환 생태계를 탄탄하게 갖춰야 지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른바 ‘쓰레기 박사’로 불리는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4월 22일 제54회 지구의 날을 앞두고 19일 서울경제신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낙후된 재활용 인프라를 단순히 개선한다는 차원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퀀텀 점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소장은 역사학을 전공했으나 환경대학원 진학을 계기로 쓰레기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2014년 지금의 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2018년 수도권 폐비닐 수거 대란이 발생했을 때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쓰레기 재활용의 첫 단계인 분리 배출의 조기교육 필요성을 제기했다. 홍 소장은 “분리 배출은 평생 지켜야 할 생활 습관”이라며 “어릴 때 신호등 지키기 같은 교통 안전 교육을 받듯 분리 배출도 더도 덜도 아닌 연간 한 차례씩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작 문제는 각 가정에서 분리 배출을 해도 수거와 선별, 재생에 이르는 재활용 시스템이 낙후돼 재활용할 수 있음에도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투명 페트(PET)병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폐페트병은 음식료·화장품 용기부터 화학섬유에 이르기까지 재활용하기 적합한 대표적인 자원”이라면서 “투명 페트병만 따로 분리하는 선별 처리장이 사실상 없어 다른 플라스틱과 뒤섞여 저급품 원료로 활용되거나 매립·소각 처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자원 순환경제는 말 그대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선형 구조가 아니라 이미 사용한 자원을 다시 쓰는 시스템”이라며 “지구촌 쓰레기 문제는 순환경제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 배출을 국가 전체적으로 동시에 시행한 첫 번째 나라입니다. 그 덕에 단순 수치상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양호합니다. 하지만 재활용 인프라가 낙후한데다 관련 기업도 영세해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고순도·고품질 재생 원료 생산은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그는 낙후된 인프라는 비단 쓰레기 처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플라스틱 규제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수출 전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머지않은 장래에 자동차용 외장재의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가 현실화할 것입니다. EU는 이미 생수 페트병에 대해 내년부터 25%의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했습니다. 이 비율은 2030년 30%로 올라갑니다. 포장재 역시 유사한 규제를 준비 중입니다. 지금은 규제 수준이 낮고 제한적 품목에 국한되지만 앞으로는 플라스틱 전반에 대한 규제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11월 부산에서 플라스틱 규제를 골자로 한 ‘유엔 플라스틱 협약’ 초안 마련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그는 “회원국 간의 이견이 커 구속력 있는 합의안을 5차 회의에서 도출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강도와 속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규제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소장은 “글로벌 기업은 친환경 경영과 환경 마케팅 차원에서 국제적 규제에 앞서 먼저 움직이고 있다”며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재활용이 용이하지 않은 소재를 쓰게 되면 선진국 위주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구촌이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겪는 한편 재생원료의 글로벌 수급 대란이 벌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유럽의 강력한 환경 규제가 비관세 장벽 또는 사다리 걷어차기 성격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국제사회를 주도할 새로운 사다리를 만들지 못하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그 사다리에 올라갈 준비를 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끝으로 환경문제는 곧 산업과 경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순환경제 전환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흔히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환경에 신경 쓸 수 있다지만 앞으로는 환경 이슈에 대응하지 못하면 먹고살기 힘든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