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등 8개 경제 부처 산하 기관장의 임기가 무더기로 종료된다. 과거 정부에서도 총선 이후 대거 공공기관장·상임감사를 임명한 선례가 있었던 만큼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의 경영 실적이 현재 누적된 채무 등으로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 없는 정치권 인사를 기용할 경우 공공기관 경쟁력을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8개 주요 경제 부처(공정거래위원회·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환경부)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알리오)을 분석한 결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142곳 중 65곳(45.8%) 수장의 임기가 연내 종료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 인사를 정하지 못한 기관도 22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9곳은 자리를 공석으로 둔 상황이다.
산업부 산하 한국남동발전 등 5개 발전 공기업은 25일 기관장 임기가 동시에 종료된다. 이들 기관은 한전의 재무 상황과 연동된 만큼 기관장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한전은 최근 3년간 누적적자만 43조 원에 달해 발전 공기업 등으로부터 중간배당을 받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지난해 9월 임명 당시 야권으로부터 ‘보은성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은 만큼 발전 공기업에 재차 낙하산 인사가 채워질 경우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부실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임감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50곳의 공공기관 가운데 21곳이 연내 임기가 끝난다. 이미 임기가 끝났지만 기존 감사가 계속 자리를 유지하는 곳도 9개에 이른다. 자리를 비워둔 기관도 3곳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여당에서 국회로 진출하지 못한 인사들이 많은 만큼 ‘보은성 인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기관장으로 가게 되면 공기업이 부실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경제 부처의 공공기관장 자리가 무더기로 바뀌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한 공공기관 수장의 3년 임기가 속속 만기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장 공모를 총선 이후로 미루면서 한 번에 공석이 대거 생긴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에 공공기관 수장 자리를 꿰차게 되면 3년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어 총선에 낙선한 정치권 인사의 ‘물밑 지원’이 잇따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8개 경제 부처의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분석한 결과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142곳 중 13곳의 기관장 임기가 이달 혹은 다음 달 종료된다. 이미 임기가 종료됐거나 공석인 곳도 22곳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만 4월부터 4개월여 동안 20곳의 기관장이 교체 대상에 오른다.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한국가스기술공사, 한국전략기술 사장이 이달 임기가 종료된다. 에너지 공공기관 외에도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의 임기도 이달 끝난다. 지난해 12월 임기가 끝난 강원랜드는 사장 퇴임 이후에도 새 사장을 선임하지 않고 있다.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코레일로지스 등도 기관장 공석 상태다. 한국디자인진흥원·한국석유공사·한전KPS 등이 6월, 한국석유관리원·한국세라믹기술원은 7월 임기가 끝날 예정이다.
타 부처 공공기관 중에는 한국투자공사(KIC)·한국한의약진흥원·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한국어촌어항공단 등 13곳의 기관장 임기가 4~5월 만료된다. 통상 1~2개월이 걸리는 공모 절차를 고려하면 본격적인 자리 경쟁은 사실상 다음 달부터 물밑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체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2024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 착수한 가운데 6월 발표하는 평가 결과를 기관장 교체에 중요한 잣대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정부는 경영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 공공기관 5곳 기관장에 대한 해임을 건의한 바 있다. 현재 이들 기관 대부분이 공석 상태다. 당시 경고를 받은 기관장까지 포함한 17명 가운데 16명이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였다. 한 공기업 임원은 “기관장 임기 종료 시점과 4월 총선에 여당 패배가 맞물려 기관장 교체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보수·진보를 떠나 정권을 위해 희생한 인사에게 공공기관장 자리를 마련해준 전례는 차고 넘친다”고 언급했다.
이번 공공기관장 공모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낙하산 인사’가 임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여당에서 낙선한 정치권 인사가 많은 데다 공공기관 임기 3년을 보장받을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대통령과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공공기관운영법 일부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여야 모두 이 법안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만큼 5월 국회 혹은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법안이 통과되면 공공기관장 임기는 2년 6개월로 줄게 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는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시간이 됐다”며 “공공기관의 부실화가 위험 수준에 이른 만큼 정치권 인사가 아닌 전문성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임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