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파트 단지에 거주 중인 A 씨는 전기차 충전을 위해 단지 내 충전소를 찾았지만 이용하지 못했다. ‘통신 문제로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문구가 충전기 화면에 나타나 있었다. 차량을 다른 충전기로 옮겨 다시 시도해봤지만 같은 문구가 반복됐다. 충전 케이블 자체가 고장난 곳도 많았다.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A 씨는 “단지에 전기차 충전기가 89대나 설치돼 있지만 고장 난 곳이 50대에 이른다”며 “만드는 것만큼 관리에 신경 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의 전동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의 상당수가 고장 나거나 사용되지 않는 등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처·기관별로 분리, 운영되고 있는 충전기 관리를 총괄할 수 있는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한국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22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개최한 ‘제35회 자동차 산업발전포럼’에서 공개된 자료를 보면 전국 충전기 29만 8702대 중 일주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용되지 않은 충전기가 7만 4210대(24.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동안 이용되지 않은 충전기는 19.6%, 30일 동안 이용되지 않은 충전기도 11.6%에 달했다.
이용률이 낮은 이유로는 충전기의 잦은 고장이 꼽힌다. 지난 수년간 충전기 설치가 급격히 이뤄졌지만 충전기 관리에는 정부와 민간 업체 모두 소홀했기 때문이다. 관련 조사를 맡은 엔지에스가 수도권과 제주 지역의 급속충전기 1만 4048대 중 4094대(29.1%)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17.4%가 작동이 불가한 상태였다. 전기차 사용자의 31%는 전기차 사용의 불편 사항으로 ‘잦은 충전기 고장’을 꼽았다. 충전기 위치가 불명확하거나 결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낮은 접근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앞서 환경부는 충전기 보급 초기에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한 뒤 이에 맞춰 충전기를 주로 설치했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설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초기 전국 단위의 보급과 충전 사각지대 해소에는 기여할 수 있었지만 효과적이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재 수요가 몰리는 주유소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전기차 충전기를 대폭 확대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지난해 급속충전기 기준 가장 충전 수요가 높은 장소다.
전동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충전기 관리와 보급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통합 기구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이규정 엔지에스 대표는 “전기차 확대 보급과 충전 시설 확충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이용자들은 여전히 충전 불편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충전기 관리와 효과적인 확대를 위해 충전기 관리를 총괄할 수 있는 전담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세가 더뎌지고 있는 만큼 전기차 소유주를 위한 파격적인 혜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기차 소유자를 위해 고속도로 전용차로의 이용 효율을 고려해 시범적으로 전기차 진입을 허용하는 안도 나왔다. 버스 통행량이 적은 경부선의 일부 구간과 영동선을 중심으로 우선 시범 적용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KAIA는 관련 주장을 경찰청에 전달하기도 했다.
강남훈 KAIA 회장은 “매년 큰 성장세를 기록하던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최근 성장률 둔화를 겪고 있다”면서 “전기차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보조금을 증액하고 충전 요금 할인 특례를 부활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