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고 더 받기’ 택한 시민 대표단…“추가개혁 불가피”

["연금 더 받자"는 시민대표단]
'소득보장론' 1안 선택 가장 많아
미래세대 부담 외면 '개악' 우려
58% “고갈 시점 2075년 이후로”
“소득보장·재정안정론 균형 맞춰야”

김상균(왼쪽 세번째)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달에 걸친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시민 대표단이 뚜렷한 재정 안정책 없 ‘더 내고 더 받는’ 국민 연금 개혁안의 손을 들었다. 다만 기금 고갈 시점은 2090년 이후로 지금보다 35년가량 늦추는 것을 원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장성 강화를 원한 시민 대표단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개혁안을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연금공론화위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숙의 토론회 직후 진행된 최종 설문 결과 시민 대표단(492명)의 56%가 소득보장론(1안)을 선택했다고 22일 밝혔다. 1안은 현행 9%인 연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면서 40%인 소득대체율도 50%까지 올리자는 것이다. ‘더 내고 더 받자’는 안이다.


재정 안정에 초점을 맞춘 2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 유지)을 고른 이들은 전체의 42.6%였다. 대표단의 80.4%는 의무 가입 상한 연령 만 64세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 만 65세로 상향하는 안에 찬성했다.





문제는 시민 대표단이 선택한 1안대로 연금 개혁을 진행할 경우 기금 재정 전망이 더 악화된다는 점이다. 공론화위에 따르면 1안을 채택할 경우 2093년 기준 누적 적자가 702조 4000억 원 증가한다. 반면 2안은 적자가 1970조 원 줄어든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대로 개혁이 진행되면 지금보다 기금의 적자 구조가 더 심해지는 개악이 된다”고 우려했다. 연금특위는 조만간 공론화위의 최종 결과를 보고 받고 여야 간 합의안 도출에 나선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5월 29일) 전에 합의안이 나오지 않으면 22대에서 원점에서 재논의를 해야만 한다.


연금 공론화위가 이날 발표한 시민대표단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당초 재정안정론에 쏠려 있던 참가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득보장론 쪽에 힘을 실었다. 시민대표단이 숙의 절차를 거치기 전 진행된 1차 조사에서는 재정안정론 측에서 제안한 2안을 선호하는 비율이 44.8%로 소득보장론을 대표하는 1안(36.9%)보다 높았다. 이후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1안을 지지하는 비중은 2차 조사 50.8%, 3차 조사 56%로 점점 확대된 반면 2안을 선택한 비율은 40%대 초반에서 머물렀다. 1차 조사에서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18.3%의 시민들이 대거 소득보장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토론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강조된 결과다.



시민 대표단이 13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연금 개혁 시민 숙의토론회에 참석해 연금 개혁 방안을 토론하고 있다. 사진=KBS 유튜브 캡쳐

실제로 소득보장론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나흘간 진행된 숙의토론회에서 노인 빈곤의 심각성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40%대다. 국민 상당수가 노인이 되면 빈곤에 처한다는 것”이라며 “소득대체율 50%는 선진국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정안정론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저소득자일수록 가입 기간이 낮아 소득대체율을 높여도 혜택이 적다”며 “어려운 사람에게 기초연금을 더 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할 경우 기존 수령액이 높은 수급자의 연금이 크게 높아지는 반면 기존 수령액이 낮은 빈곤 노인의 소득 개선 효과는 미비해 역진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보장성 강화 여론을 확인한 야당은 설문 결과가 발표된 직후 연금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연금 개혁을 예고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그동안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며 “공론화위 조사 결과를 존중하며 21대 국회 내에 입법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다만 김 의원은 “설문 과정에서 논의된 1안을 정답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개혁안이 다듬어질 여지를 남겼다. 1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연금 재정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금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면서 재정 전망에 변화가 없으려면 보험료율을 5%포인트 올려야 한다. 시민대표단의 지지를 받은 1안의 경우 보험료율 인상 폭이 4%포인트에 그쳐 그대로 시행할 경우 2093년 기준 누적 적자가 되레 702조 4000억 원 늘어난다.




중요한 것은 연금의 재정 안정성 확보를 요구하는 시민대표단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공론화위가 이날 발표한 시민대표단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언제까지로 연장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57.9%가 2075년 이후가 적절하다고 답했다. 고갈 시점이 2060년까지만 돼도 충분하다는 비율은 5.3%에 그쳤다. 이번에 논의된 1·2안의 고갈 시점은 각각 2061년·2062년이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민대표단이 재정 안정을 바라기도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소득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1안대로 연금 개혁이 진행될 경우 결국 몇 년 뒤 또다시 재정 안정성 확보를 위한 개혁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며 “재정 안정화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에서 최종안을 다듬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지금대로면 5~10년 내 재정 안정화를 위한 추가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대표단의 결론이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득 보장률을 높이면서 연금 고갈 시점은 미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이를 세금으로 풀기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0.5%가 ‘선제적인 국고 투입을 통해 미래 세대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하자’고 답했다. 이 경우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번 연금 개혁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의무 가입 상한 연령은 현행 만 59세에서 만 64세로 높아져 수급 개시 연령(만 65세)과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대표단 설문 결과 80.4%가 의무 가입 연령 상향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균 가입 기간 확대를 위해 가입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특수형태근로자들을 연금제도에 편입시키기 위해 플랫폼·원청 기업에 사용자 보험료를 부과하자는 제안에는 91.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반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과의 관계를 놓고는 시민대표단의 반응에서 소득보장론(52.3%)과 재정안정론(45.7%)이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히 맞섰다.


앞서 시민 대표단은 3월말부터 숙의 공론화 과정에 참여했다. 2주간의 자체 학습 기간을 가진 뒤 13·14·20·21일에는 전국 5곳의 KBS에 모여 숙의 토론회를 진행했다. 연금개혁 논의에서 시민참여형 공론화 과정을 거친 것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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