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 벗어나니 내 이야기 가능…작곡가 타이틀도 얻었죠"

■피아니스트 서형민 인터뷰
3년전 獨콩쿠르 우승 후 자유 얻어
'방황하는 한국인' 작곡·초연까지
"클래식 넘어 다양한 장르 만들 것"

서형민 피아니스트 /사진 제공=원아트

서형민 피아니스트 /사진 제공=원아트



“20대는 콩쿠르에 우승하기 위한 피아노를 치다 보니 너무 억제해도, 너무 표현해도 안 되고 정석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이제 모든 굴레를 벗어나니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21년 독일 본 베토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서형민 피아니스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승 이후 콩쿠르를 졸업하며 두 가지를 얻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첫 번째는 ‘표현의 자유’다. 기존에는 콩쿠르에 계속 출전해야 하다 보니 심사위원에게 지적당하지 않기 위해 완벽을 추구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이돌이 칼군무를 완벽하게 하더라도 표정이 굳어 있는 것과 표정이 즐거운 상태에서 춤을 추는 것은 전달 받는 사람에게도 차이가 있다”며 “콩쿠르를 졸업하면서 내 이야기, 내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말했다.


국내 정상급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작곡도 하고 있는 서 피아니스트는 공식적으로 작곡가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베토벤 국제 콩쿠르 주최 측인 독일 대표 통신사인 도이치 텔레콤으로부터 정식으로 곡 의뢰를 받게 되면서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오마주해 ‘방황하는 한국인’ 시리즈를 작곡, 초연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독일에서 공부하고 여러 나라를 오가며 방황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겼다. 이 중 ‘방황하는 한국인 – 서울 오징어게임’에는 드라마 OST의 표현 방식을 참고해 대중적 요소를 대폭 담았다.


그는 “불협화음도 일부 넣기는 했지만 많이 타협했다”며 “기본적으로 클래식은 장르의 한 종류일뿐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다양하게 작곡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이치 텔레콤 측이 후원하는 명문 구단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는 김민재 선수의 응원가를 작곡하는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서형민 피아니스트 /사진 제공=원아트


그는 특히 현대 음악이 극도의 불협화음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서 피아니스트는 “작곡하는 사람도 힘들고 연주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힘든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클래식을 더 주변부 장르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콘서트에서 앙코르 곡으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일부 관객들은 곡 선정이 가볍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상당수 관객들에게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다’ 등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원아트’와 전속 아티스트로 계약을 맺으면서 클래식 예능 유튜브 채널 또모에서 몰카 영상 등에 출연하는 등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그는 여덟 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피아니스트 영재 소리를 듣고 열 한 살 때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후 중학교부터는 피아노보다는 학업에 집중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역사학을 전공했다. 컬럼비아대는 자매 결연을 맺은 줄리어드 음대에서 임마누엘 엑스 교수에게 사사할 수 있는 특전까지 제공했다. 엑스 교수는 베토벤의 7대 직계 제자로, 제자들을 소수만 받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임동혁 피아니스트가 그에게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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