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미래 시스템 반도체 설계자산(IP)으로 낙점한 ‘RISC-V’ 표준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어깃장을 놓고 있다. ARM·x86 등 기존 중앙처리장치(CPU)와 달리 설계도가 공개된 ‘오픈소스’인 RISC-V가 중국 반도체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RISC-V를 “잠재적 위험”으로 평가하며 삼성전자가 포함된 관련 생태계도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미 상무부가 국회의원들에게 중국의 RISC-V 기술 관여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미 상하원 의원 18명이 “중국이 RISC-V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국 안보를 희생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한 답변이다. 상무부는 서한에서 “‘잠재적인 위험’을 검토하고 우려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치가 있는지 평가하고 있다”며 “RISC-V를 연구하는 미국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 깊게 조치해야 한다”고 적었다.
중국의 RISC-V 연구를 잠재적 위험으로 판단하는 한편 미국 기업들도 RISC-V 개발에 다수 개입돼 있는 만큼 ‘손익’을 따져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RISC-V 프로젝트에는 각국 기업들이 다수 개입 돼 있다. 퀄컴(회장사)·인텔·구글·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으나 부회장사 중에는 알리바바가 있고, 화웨이와 텐센트, ZTE가 ‘프리미엄 회원’이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멤버보다 한 단계 낮은 ‘전략 회원’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 설계 프로젝트 중 중국 입김이 가장 강한 경우인 셈이다.
이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는 RISC-V의 태생에 기인한 결과다. RISC-V는 모바일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ARM 기반 CPU와 유사한 RISC(축소명령집합컴퓨터) 방식의 새 CPU다. 다만 설계도가 개방된 RISC-V 기반으로 만든 CPU는 ARM에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 반도체 설계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이 ‘기술 독립’을 꿈꾸며 RISC-V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RISC-V에 주목하는 배경도 같다. 엑시노스 등 모바일 CPU에서 ARM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전력 소모가 낮은 RISC 방식 CPU가 인공지능(AI) 연산에 쓰이는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차세대 AI 가속기 개발에서도 반전 계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 어드밴스드프로세서랩(APL)을 조직하고 RISC-V 관련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본지 4월 19일자 보도>
그러나 미 정부가 RISC-V와 중국 간 연계점을 파고들기 시작하며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설계 전략은 시작부터 암초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기술 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RISC-V가 미국과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전략 경쟁의 새 전선이 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