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과세 유예 방안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힘을 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해 금투세 폐지를 밀어붙이가 어려워졌고 야당은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다 개미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절충점을 찾게 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시장과 국회 상황을 고려할 때 금투세 폐지는 사실상 힘들고 유예하는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복수의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금투세는 자본시장 선진화의 일환으로 도입해야 하지만 최근 주식시장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의원은 “2년가량 유예해 국민들의 금투세 이해 수준을 높일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투세는 주식과 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 투자로 얻은 이익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금융투자에 따른 이익과 손실을 더해 연간 50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규모에 따라 20~25%의 세금을 매긴다. 2022년 기획재정부의 분석에 따르면 금투세 도입 시 상장 주식 과세 대상은 기존의 1만 5000명에서 15만 명으로 10배 급증한다.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이 컸고 윤석열 대통령은 올 1월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반면 야당은 이미 한 차례 유예한 데다 과세 대상도 전체 투자자(1500만 명)의 1%에 불과하다며 시행을 요구해왔다.
야당의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은 여론 때문이다. 최근 금투세 폐지를 담은 국회 입법청원이 7일 만에 5만 명을 넘어서면서 기재위 회부 요건을 갖췄다. 민주당은 21대가 아닌 22대 국회 개원 이후 다른 세제 법안 및 예산안과 통합해 금투세 유예 기간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야당이 입법청원에 압박을 받는 것 같다”며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야당에서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개인투자자의 세 부담이 커진다”는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글은 일주일 만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로 넘어갔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022년 당시 금투세를 시행할 경우 세금을 내야 할 주식 투자자를 약 15만 명으로 추산했다. 기존 부과 대상자의 10배 수준이다. 정부와 여권에서 금투세 폐지론이 나온 것도 세금을 내야 할 개인투자자가 급격히 늘기 때문이었다. 기존에는 한 종목을 50억 원 이상 보유하거나 지분율이 1%(코스피 상장사 기준, 코스닥은 2%)인 대주주가 아니라면 주식 투자에 따른 양도차익을 낼 필요가 없었다. 거래액에 붙는 0.18% 세율(2024년 기준)의 증권거래세만 내면 됐다. 그러나 금투세가 도입될 경우 5000만 원 이상의 양도차익을 본 사람은 세금을 내야 돼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불만이 적지 않았다.
기관 시스템 구축비용도 만만찮아
증권사 입장에서도 금투세 도입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국내 10개 증권사가 2020년 말 금투세 도입 후 2023년까지 외부 컨설팅비와 전산 구축비 등으로 지불한 계약 비용은 450억 원에 달한다. 국세청도 새로운 조세 시스템 개발을 위해 230억 원을 지출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금투세가 도입되면 실무상 바뀌는 부분이 상당하다”며 “금투세 도입 여부에 계속 촉각을 기울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금투세 폐지 여론이 예상 외로 강하다는 점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가 2022년 당시 금투세 시행 시기를 기존 2023년에서 2025년으로 미룬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당시 “주가와 시장이 얼어 있는 지금 굳이 야당인 민주당이 금투세를 추진해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증권 업계와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총선 전에도 금투세 시행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많았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야당 등 국회가 결국 여론을 반영해서 금투세 도입을 연기하는 쪽으로 계획을 짤 것 같다”고 전했다.
유예땐 금융세제 정비 줄줄이 밀려
다만 일각에서는 금투세 도입이 미뤄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금투세 폐지 방침을 밝혀왔지만 금투세 도입이 계속 연기될 경우 당초 제도 시행의 취지였던 ‘금융투자상품 과세 정비’ 역시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 금투세 도입을 발표하면서 열거주의 과세를 현행 금융투자상품 세제의 핵심 문제점으로 꼽았다. 각 상품별로 비과세·양도차익·배당소득 판단 여부가 제각각이라 조세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상품별 조세 형평성 문제도 컸다. 예를 들어 주식 양도차익은 비과세인데 주가연계증권(ELS) 수익에는 15.4%(지방세 포함)의 배당소득세를 물어야 했다.
현행 제도가 공모펀드 등 간접투자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펀드에 편입된 상장 주식 손익은 과세표준에 포함되지 않아 손실이 나도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펀드가 편입한 주식에서 70억 원의 손실이 나고 채권양도 이익에서 20억 원의 수익이 나 총 50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해도 과표에는 ‘채권양도 이익 20억 원’만 포함돼 결과적으로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당해 본 손실분을 향후 5년간 인정해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손실 이월 공제 역시 뒤로 밀리게 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투세 도입이 연기될 경우 그동안 남아 있었던 금융투자 세제상 문제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짚었다. 한 세법 전공 교수는 “원래 금투세 도입의 취지는 금융 세제 정비였다”며 “개인투자자 비과세에만 정치적 이목이 쏠려 있어 아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세수도 문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금투세 시행으로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총 4조 328억 원의 세수가 들어올 것이라고 추산했다. 금투세 시행이 연기된다면 이 만큼의 세수가 덜 들어오게 된다는 의미다. 현재 0.18%인 증권거래세도 내년 0.15%로 내려갈 예정이라 자본시장에서 들어오는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금투세 유예 여부에 따라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 세제의 향방이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추진할 수 있을지 보려면 금투세 도입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금투세 도입에 대한 정치적 논란으로 밸류업 프로그램 세제 시행 여부 관련 불확실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