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의 어느날, 서울 망원동의 '수리상점 곰손'을 찾아갔습니다. 올해 2월에 문을 연 수리상점 곰손은 우산부터 시작해서 깨진 그릇, 오래 써서 배터리 성능이 형편 없는 스마트폰, 구멍난 옷 등 정말 다양한 물건을 고쳐쓰자는 취지로 운영되는 일종의 작업장입니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에디터가 찾아간 날에는 집에서 뒹구는 색조 화장품으로 물감을 만들고, 재탄생한 물감들로 그린 작가님들의 전시도 감상하는 화장품 업사이클 체험형 전시회,
곰손에는 미리 신청한 참가자들을 위해 재료도 도구도 다 준비돼 있었습니다. 정해진 용량대로 작은 유리판 위에 재료(남은 색조화장품 가루, 수채화용 보조제, 아트탭 리퀴드 등)를 덜어준 다음 페인팅 나이프로 섞고, 유리 뮬러로 5분 정도 맷돌 갈듯이 살살 갈아주면 끝입니다. 손재주가 부족해 곱게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만드는 방법 자체는 쉬웠습니다.
바로 옆에는 색조 화장품 물감들을 직접 칠해볼 수 있는 밑그림도 준비됐습니다. 알고 보니 곰손과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한 아트탭(인스타그램)은 버려지는 색조화장품을 물감으로 부활시키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해온 곳입니다. 그리고 아트탭이 만든 화장품 업사이클링 브랜드, BALA의 환경교육 키트도 구성이 알찹니다. 12색 팔레트와 붓펜, 밑그림 엽서 12장으로 구성됐고 밑그림에 동물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공간, '수리상점 곰손'을 지키는 ‘혜몽’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원래 곰손은 제로웨이스트 성지, '알맹상점'을 만든 알짜님들 일부가 뜻을 모아 연 스핀오프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맹상점을 기반으로 제로웨이스트, 자원순환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오다가 특히 지난해 ‘수리권’에 주력하다보니 따로 공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참고로 수리권은 어떤 물건이든 처음부터 소비자가 고쳐 쓰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비자의 권리입니다. 한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진짜 친환경이니까 말입니다. 낯선 개념이지만 프랑스 등에서는 전자제품 등을 중심으로 수리권 규제가 이미 도입됐습니다. 예를 들어 전용 수리 키트와 수리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 수리권을 보장하는 스마트폰은 높은 등급을 받는 식입니다.
혜몽님은 "거점 공간을 통해서 수리 문화를 확산시킬 한국형 리페어 카페가 필요하다 싶었다"고 했습니다. "공간을 빌리고 나면 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는 말씀에서 저돌적이기 그지 없는 추진력이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수리상점 곰손은 개업 두 달만에 재봉틀 수업·킨츠키 교실·아이폰 배터리 교체·손뜨개·가방 방수 커버 업사이클링, 칼·가위 가는 법 워크숍·바지 리폼·비닐 업사이클링·반려공구 사용법 강의·고체 샴푸바 만들기까지 숱한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곰손 멤버십'도 만들었습니다. 운영시간 동안 자유롭게 작업장을 이용하고 곰손의 워크숍·대관 비용도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월 1만9000원(청소년은 9000원)에 가입할 수 있는데, 수리·수선 문화에 관심이 있고 곰손과 워크숍 기획 등 야망이 있는 분들을 환영한다고 합니다.
혜몽님은 "곰손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을 절실히 찾는 중"이라면서 "앞으로 같이 하고픈 친환경 '셀럽' 분들도 모셔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경기불황일 때 수리 문화가 부흥한다는 조사가 있었다는데, "우리나라도 요즘 같은 불황기에 고쳐쓰는 분들이 늘어나고 수리가 힙해지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수리상점 곰손의 정말 다양한 수리 워크숍, 프로그램은 인스타그램에서 상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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