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유서 깊은 자산이지만 매력적인 투자처는 아니다. 일단 ‘안전자산’인 만큼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다. ‘텐베거(10배 수익)’의 꿈을 꾸는 주식 투자자에게 금은 ‘재미없는’ 투자처인 셈이다. 반대편의 안전추구형들도 금을 맹종하지는 않는다. 금은 이자나 배당을 주지 않아서다. 요즘처럼 예금이자만 연 3~4%인 고금리 환경이라면 금이 인기 없는 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지금 금값은 랠리 중이다. 6개월간 30%, 올해만 15% 오르며 역사상 최고가를 스무 번이나 갈아치웠다. 가격도 가격인데, 금 투자 상식이 대부분 무너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묘한 현상이다. 일례로 금 선물은 통상 달러로 표시되기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금 구매력이 떨어져 가격이 하락한다. 그래서 달러와 금값은 반대로 움직인다는데 요즘 금값은 달러와 나란히 달린다. 또 금은 미국 국채 수익률과도 역(逆) 상관관계에 있다는 게 통념이다. 이자가 없는 금은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가 사실상 기회비용인 만큼 금리가 오르면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이 4.5%를 웃도는 지금도 금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금의 위상이 여느 때보다 높아진 셈이다.
과거와 무엇이 달라진 걸까. 금의 혼란스러운 랠리를 해석하는 전문가들은 “오늘날 세계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너무 많아졌다”고 말한다. 위험에는 중동 분쟁 같은 지정학적 갈등도 있지만 각국 정부의 헛발질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리스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금의 안전함이 돋보인다는 주장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물가와 금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예측을 최소 세 번 이상 크게 틀린 실수가 자리하고 있다. 연준은 2021년 하반기까지 ‘고물가가 일시적’이라고 고집부리다 허겁지겁 금리를 올렸고 올 2월까지도 ‘곧 물가가 안정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물가는 여전히 높다. 이런 맥락에서 인플레이션 헤지가 목표인 금의 랠리는 마치 ‘연준이 또 틀릴 것’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선거의 해를 맞아 막대한 돈이 드는 공약과 정책을 남발하는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빚투성이 정부의 채권은 더 이상 안전자산이 될 수 없다.
금에 대한 열광에서 국가 불신까지 읽는 건 과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확실한 위험만큼은 피하고 보는 게 투자자들의 생리다. 우리 정부가 ‘코리아 밸류업’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투자자들의 심리도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