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가 미국 대학가 전역으로 퍼진 가운데 미국 정치권도 ‘표현의 자유’와 ‘반(反)유대주의’를 놓고 대립하며 몸살을 앓고 있다. 백악관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전방위 외교전에 나섰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28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달 18일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며 텐트 농성을 벌이던 학생 108명이 연행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 전역의 대학에서 800명 이상이 체포됐다.
경찰의 컬럼비아대 진입은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시위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미국 주요 대학에서 들불처럼 시위가 번졌고 대학 관계자들이 경찰 투입을 요청하며 각 캠퍼스마다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미 정치권도 이번 시위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의 경우 이번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볼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내홍에 빠진 모습이다. 존 페터먼 민주당 상원의원은 “시위는 위대한 미국의 가치지만 하마스를 위해 텐트에서 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모든 시위에 반유대주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시위에 반유대주의가 있지만 압도적 다수는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 기계에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지쳤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시위대의 반유대주의 구호를 문제 삼으면서 주방위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악관은 평화적 시위는 존중하지만 반유대주의는 규탄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이) 강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시위를 어떻게 관리할지는 지방 당국에 맡겨두겠지만 우리는 시위가 평화적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전은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피란민이 밀집해 있는 라파를 공격하는 것을 만류하면서 하마스와의 휴전 합의를 강력히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재 진행 중인 휴전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하마스 잔당 퇴치를 명분으로 라파 진입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라파 지상전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감지되는 가운데 중재국들은 막판 봉합에 나서고 있다. 카타르 매체 알아라비알자디드에 따르면 이집트는 29일 이스라엘 대표단을 카이로로 초청해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다. 협상에는 하마스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하마스 관계자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장애물을 만들지 않는 한 분위기는 긍정적”이라며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제안한 내용과 하마스가 제출한 의견 사이에 큰 문제는 없다”고 전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다음 달 1일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찾아 휴전 협상과 인도주의적 지원 확대, 두 국가 해법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