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비 기업 주성엔지니어링이 반도체와 태양광·디스플레이 사업을 분리하는 인적·물적 분할을 동시 추진한다. 핵심인 반도체 사업은 인적분할해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피하고 태양광·디스플레이 사업은 물적분할해 지배력을 높게 유지하는 것이 골자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사업 부문 분할 추진 배경으로 경영 효율화과 ‘기업가치 세계화’를 꼽았다. 그동안 반도체 부문이 다른 사업 부문 손실을 메꾸는 구조에서 탈피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태양광 사업을 분리하는 인적·물적 분할을 동시 추진한다고 2일 공시했다. 회사의 핵심인 반도체 사업은 인적분할로 반도체 기술 개발과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별도 법인 주성엔지니어링(가칭)을 만들고, 디스플레이·태양광 사업은 물적분할해 기존 법인의 100% 자회사인 주성에스디(가칭)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존 법인은 주성(가칭) 또는 주성홀딩스(가칭) 등으로 이름을 바꿔 계열사와 관계사 투자, 관리를 전담하는 지주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주성엔지니어링이 반도체 부문 인적분할을 결정한 것은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피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인적분할은 모회사의 주주들이 기존 비율대로 자회사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어 핵심·유망 산업에 대한 소유권을 보전할 수 있지만 물적분할은 존속회사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는 구조여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벗어나기 어렵다. 앞서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물적분할로 논란을 빚으면서 금융 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물적분할 시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자회사 상장 시 심사 강화 방침을 밝힌 것도 부담이다. 다만 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인적·물적 분할은 모두 경영 효율성 증대와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1993년 설립된 주성엔지니어링은 1995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개발한 ‘벤처 1세대’ 기업으로 지금은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장비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1999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 줄곧 우리나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이날 밝힌 올 1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556억 원, 영업이익 70억 원이다.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42.5%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64.7% 줄어들었다. 올 1분기 주요 반도체 기업 실적이 반등한 데 비해 주성엔지니어링은 되레 경영이 악화된 것이다. 이에 대해 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가 아직 매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시장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성엔지니어링은 그동안 반도체 부문에서 돈을 벌어 디스플레이·태양광 부문 적자·투자 비용을 메꾸는 구조를 가져왔다.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장비 매출은 2148억 원으로 전체 매출 2847억 원의 75.4%에 달한다. 이런 구조로 ‘차세대 ALD 장비’ 등 신기술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사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하자 기업 분할에 나서게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인적분할하는 반도체 법인을 추후 재상장하면 전체적인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