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김진표 국회의장까지 강도 높게 압박하며 결국 ‘채상병특검법’을 단독 처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을 거듭 유도해 비판 여론을 모아보겠다는 정치적 계산만 깔려 있을 뿐 협치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사안인 만큼 그 결과를 보고 특별검사 추진 여부를 결정하자는 국민의힘 의견은 묵살됐다. 이태원특별법 합의로 조성된 협치 분위기는 단 하루 만에 깨지며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여야 간 정쟁과 극한 대치만 이어지게 됐다.
민주당은 2일 본회의에서 이태원특별법이 합의 처리되자 곧장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고 과반 의석을 활용해 채상병특검법을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반대해왔던 채상병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다. 채상병특검법은 지난해 7월 해병대 채 모 상병이 경북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사건에 대한 초동 수사, 경찰 이첩 과정에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한 의혹을 규명하는 특검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법안은 민주당 등 야권의 단독 처리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돼 지난달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였다.
여야 간 합의를 요구해왔던 김 의장도 친정인 민주당의 초강도 압박을 이겨내지 못했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 표결 여부는 김 의장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은 “본 안건에 대한 여야의 합의 처리를 독려해왔다”면서도 “신속처리제도 도입 취지에 비춰볼 때 임기 내에 어떠한 절차를 거치든 마무리돼야 한다”며 표결을 진행했다.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김 의장의 마지막 해외 순방까지 저지하겠다고 압박하는가 하면 막말도 서슴지 않으며 김 의장의 결정을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한 것과 수사 상황을 브리핑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등을 독소 조항으로 규정하고 반대해왔다. 특히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때 출범시킨 공수처가 압수수색 및 관련자 소환 등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하지만 특검법 처리 이후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내 협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시선”이라며 “그에 따라 법안이 처리됐다”고 자평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방침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 대회를 열고 “(채상병특검법은) 정쟁과 독소 조항이 가득 차 있다”며 “(거부권 행사 후 재표결 시) 의원총회를 거쳐 당의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지금까지 열세 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면서 “향후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시사했다.
민주당이 이날 특검법 처리를 의도한 것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노린 것이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휴일을 포함해 15일 이내다. 통상 법안 이송이 금요일에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다음 주인 10일 이송돼도 5월 말 본회의에서 재표결 시도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여당 내 비주류들의 이탈표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의석상 여당에서 17표만 이탈해도 재표결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
국민의힘 역시 이탈표에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21대를 끝으로 국회를 떠나는 여당 의원이 55명에 이르는 만큼 이들이 소신 투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달 27~28일 본회의를 열어 전세사기특별법 또한 강행 처리할 계획이다. 앞서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전세사기특별법을 부의하는 건은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68인 중 찬성 176인, 반대 90인, 무효 2인으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법안의 핵심 내용인 피해자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수조 원의 혈세 투입과 재정 부담을 낳을 수 있어 반대해왔다. 여야가 합의한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59인 중 찬성 256인, 기권 3인으로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