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고심 판단 전까지 의대 모집 정원을 승인하지 말아 달라’는 재판부 발언을 두고 ‘사법부의 지나친 개입이 정책 추진의 지연과 혼란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법원이 정부에 의대 증원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승인 보류 등 언급에 따른 이른바 ‘월권’ 논란이 법조·학계는 물론 시민 단체까지 한층 확산되는 모양새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3일 논평을 내고 “의대생, 전공의, 의대 교수는 소를 제기할 자격이 없고, 이런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았다”며 “그런데도 항고심 재판부가 당사자 적격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채 행정 행위에 대한 타당성을 따지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며 월권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법부가 행정부 권한인 대학교 증원 정책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증원 규모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이므로, 재판부는 절차 외에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배상원·최다은 부장판사)가 지난달 30일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의대 입시 준비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소심 심문에서 대학의 인적·물적 시설에 대한 심사 여부 등 의대 증원 규모로 2000명을 정했던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5월 중순까지 (항고심 판단을) 결정하겠다”며 “그 전까지 의대 모집 정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아 달라”고 권고했다.
시민 단체까지 나서 재판부 행위에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건 ‘승인을 하지 말라’는 권고가 자칫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넘어선 행위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 심문 과정에서 내린 요구에 대해서는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자료 제출은 물론 ‘승인을 하지 말라’는 권고는 다소 선을 넘은 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승인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자체가 사법부가 해야 할 역할을 벗어난 행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의대 정원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함께 환자들의 피해까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정부 정책이 아니다”며 “특히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대해 법원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자체가 비정상적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칫 월권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김정중 부장판사)는 ‘의대 교수와 학생 등은 사건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서울행정법원에서 1심 심리를 진행 중인 본안 판결이 이뤄질 때까지 정부가 의대 모집 정원 최종 승인을 하지 못하는 등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해당 교수는 이어 “사법부의 역할은 위법성에 대한 통제이지, 정책에 대한 판단까지 해서는 안 된다”며 “법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는 있으나 (의대 정원 승인을) 진행하지 말라고 하는 건 법원의 역할 범위를 벗어난 행위”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로스쿨 교수는 “(법원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결국 정부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사실상 구속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정부가 정책 하나를 추진할 때마다 법원이 근거를 제시하라는 행위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