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분기 실질국내총생산(GDP)이 '깜짝 성장'한 것으로 발표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6%로 상향 전망까지 했습니다. 2월 2.2%를 제시한 뒤 석달 만입니다. 언론을 비롯한 여러 경제전망 기관들도 예상밖의 선전에 놀란 눈치였습니다. 기획재정부도 긴 경기둔화 터널을 벗어났다는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1.3% 속보치가 나오자 “성장 경로에 선명한 청신호가 들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실제로 2021년 4분기 이후 2년 3개월, 코로나 기간(2020~2021년)을 제외하면 4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입니다. 최 부총리는 “교과서적인 성장경로로의 복귀”라고도 했습니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무섭게 2일 OECD가 내놓은 2.6%전망치는 국제통화기금(IMF·2.3%), 정부(2.2%), 한국개발연구원(2.2%), 한국은행(2.1%) 등 다른 주요 기관보다 높은 수치였습니다.
1분기 GDP가 기존 예상 0.6%를 웃도는 1.3%(전 분기 대비)로 나타난 만큼 정부와 한은도 기존 전망을 상향 조정할 것이 확실시 됩니다. 실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연차총회 참석차 방문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국내 기자단과 간담회를 통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얼마나 하느냐가 문제지 상향 조정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총재는 “예상과 큰 차이가 났는데 어디서 차이가 났는지 검토 중으로 특히 내수가 우리 생각보다 좋게 나왔다”며 “1분기 성장률 1.3%는 직관적으로 지난해 한해 성장률 1.4%를 한 분기에 했다고 볼 정도로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경기 회복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충분한 근거가 될 법 합니다. 그런데 1분기 성장률을 발표한 지 한 주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30일 3월 산업활동동향에서는 산업생산이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4년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3월 산업활동동향을 구체적으로 보면 전산업생산지수는 전월보다 2.1%감소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째 이어진 증가세가 5개월 만에 꺾인 겁니다. 감소폭도 2020년 2월 -3.2%이후 가장 컸습니다.
특히 1분기 제조업 생산을 보면 전 분기보다 0.5% 감소했습니다. 5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으로 특히 3월 제조업 생산이 3.5%나 줄며 2022년 12월(-4.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영향이 컸습니다. 더구나 2022년 12월 제조업 생산 하락은 반도체 불황이 주원인이었다면 3월 제조업 생산 하락은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 대부분이 좋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3월 설비투자와 건설기성도 각각 전월보다 6.6%, 8.7% 감소한 데 이어 향후 건설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1분기 건설 수주액도 전년 동기 대비 18.8% 급감했습니다.
동행지수와 선행종합지수도 나란히 떨어졌습니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99.6으로 전월보다 0.3포인트, 향후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100.3으로 전월보다 0.2포인트 내렸습니다. 두 지표가 동시에 하락한 것은 지난해 1월 이후 1년 2개월 만입니다. 정부는 “1월과 2월이 좋았던 데 따른 기저 효과”라고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습니다. 1분기 GDP와 3월 산업활동동향 지표 자체의 방향성이 같고 1분기 GDP자체에 3월 상황이 포함돼 있어 일시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GDP가 좀더 긴 호흡으로 경제 상황을 설명한다면 산업활동동향은 속보성 수치에 가깝다는 점도 부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찜찜합니다. 지나친 낙관론에 경계심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3일 보고서를 통해 “1분기 GDP가 정부에서 말하는 대로 교과서적인 성장 경로로의 복귀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경제지표와 GDP 발표상의 괴리를 지적하며 괴리의 배경을 한국 '민간소비'와 '국내소비'의 디커플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내수가 안좋다고 정부와 언론이 하루가 멀다하고 지적했는데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비지표는 한 달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시 들여다 보면 우선 서비스 소비로 해석할 수 있는 1분기 서비스업 생산은 전 분기보다 0.8% 늘었습니다. 반면 서비스·해외 지출을 제외한 재화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는 0.2% 감소했습니다. 최 연구원의 지적이 들어맞는 수치입니다. 다시말해 최근 국내소비는 감소세를 보이는 반면 자국인의 국외소비는 10%대의 성장세를 지속했다는 것입니다. 해외가서 쓴 자국인의 소비는 GDP계산에도 포함됩니다.
실제 가계소비 중 국외소비 비중은 2022년 1분기 1.26%에서 2023년 4분기 3.19%로 상승했습니다. 최근 해외 여행 증가 추세로 판단했을 때 이 비중은 올해 1분기 더 높아졌을 겁니다. 그렇게 어렵다던 내수가 예상보다 좋아 깜짝 성장을 했다는 지표가 결국 외국에서 돈을 쓴 게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소비가 경기에 중요한 이유는 소비확대로 인한 기업이익 증가가 연결된다는 가정인데 국외소비는 한국이 아닌 국외기업의 이익 증가로 연결되기 때문에 소비 확대에 따른 민간경제 선순환에 포함되지 않아 경기반등 기대감이 아직 이르다는 평가입니다.
때마침 한국개발연구원(KDI)는 한국은행 기준금리(3.5%)가 1년 5개월 째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누적된 고금리 압박이 민생경기와 내수,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민간소비는 3개 분기 후 최대 0.7%포인트 줄고, 파급효과가 인상 이후 9개 분기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설비투자는 3개 분기 후 최대 2.9%포인트 급감하고, 그 영향이 8개 분기까지 이어져 충격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사정이 이렇자 내수를 살려야 한다며 금리인하 시점을 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인플레 자극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시기상조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화, 재정정책 결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OECD가 2.2%에서 2.6%로 GDP성장률을 대폭 끌어올린 것은 고금리·고물가 여파에 침체됐던 내수가 올해 하반기 이후 금리인하와 함께 회복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했습니다. 정부와 통화당국의 고심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