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대가 최재천 교수가 한국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부분으로 토론 문화를 들고 나왔다. 신간 ‘숙론’을 통해서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에서 토론을 하겠다고 모이면 굉장히 결연한 모습을 보인다”며 “‘누가 맞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맞는가’를 찾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9년 간의 고민 끝에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 ‘토론’ 대신 ‘숙론(熟論)’을 제안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이를 숙고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다는 의미다.
숙론을 위해 그는 정부나 국회 토론회나 학계 심포지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제-지정 토론-종합 토론’ 구조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8년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장을 비롯해 2021년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장을 맡아 숙론 문화를 실험해볼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숙론을 할 때는 일부만 단상 위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 널찍한 공간에 동심원으로 의자를 배치하고 서너 개의 원이 겹겹이 둘러싸는 구조를 만드는 게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제일 중심부의 원에는 그날의 토론자, 발제자가 들어가고 그 다음 원에는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 세 번째 원에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 네 번째 원에는 누구든 앉을 수 있다. 그는 “제일 바깥쪽 동심원에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게 판을 뒤집을 수도 있기에 중요한 요소”라며 “전문가로 구성된 작은 원이 점점 커져야 숙론의 장이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퇴를 하고 나면 직접 고안한 방법론으로 마음껏 숙론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조성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말할 기회가 없다”며 “숙론의 장을 만들고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먼저 매달리고 싶은 화두는 저출생 문제다. 최 교수는 “정부 부처나 대통령실 한 두곳에서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다양한 분야들의 연결고리를 절묘하게 이어 숙론을 거치지 않으면 풀 가망성조차 없을 것”이라며 “인구학, 경제학뿐만 아니라 정치, 행정, 교육 분야의 전문가를 잘 불러모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