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기 위해 개인의 원금과 이자 상환 능력을 바탕으로 대출 한도를 결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가계대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을 최근 시행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2월 말부터 금리 상승 위험을 반영해 변동금리 대출 한도를 추가로 줄이는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4월 초부터 은행 자체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늘리기 위한 목표를 신설한 것이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 3월 전월 대비 11개월 만에 감소했던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한 달 만에 다시 급증했다. 또 3월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전월 대비 8.1%포인트 상승한 42.5%가 됐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스트레스 DSR 제도 도입 시점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4월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가 전망되고 우리나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미국보다 빠르게 하락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 따라서 올해 금융 당국이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한 것은 대출금리 고점에서 금융소비자들이 고정금리 대출을 받도록 유도한 셈이 된다. 앞으로 기준금리가 인하돼 대출금리도 하락하면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달라는 요구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 DSR 제도 시행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이 무리하게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증가하면 통화정책의 전달 경로가 약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이에 따라 대출금리도 상승한다. 그러면 변동금리 대출 차주는 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해 소비를 줄이고 이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켜 물가를 떨어트린다. 하지만 고정금리 대출 차주는 이자 상환 부담이 변하지 않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정금리 대출 차주의 비중이 커지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도 물가가 하락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늘리면 금리 상승기에 주택 매매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금리가 낮을 때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주택을 산 차주들은 금리 상승기에 현 주택을 팔고 새 주택을 사려면 더 높은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높은 이자 부담 때문에 주택 거래와 이사를 포기한다. 이는 주택 매물 감소로 이어져 주택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 또 금융기관들이 예금 등 변동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면 차주 대신 금융기관이 금리 변동 위험에 노출돼 금융 안정을 저해한다.
금융 당국은 무리하게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늘리는 대신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간 선택을 금융소비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전세자금대출이나 정책자금대출 등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대출을 줄여 DSR 규제의 유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