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길' 가려 하나 [동십자각]

강동효 경제부 차장


지난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청년 배낭족은 기자에게 “스카이다이빙을 꼭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유를 물으니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의 반값이라고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난 한 미국인은 아르헨티나에서 옷을 대거 구입해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미국 아웃렛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게 이유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아르헨티나의 실상이었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잘 살았던 아르헨티나는 화폐가치 절하로 신음하고 있다. 달러를 가진 외국인에게는 저렴한 방문지가 됐지만 자국 화폐로 급여를 받는 내국인은 물가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경제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지출과 중앙은행의 지나친 통화 발행이다. 아르헨티나는 ‘페론의 망령’이라 불릴 정도로 나랏돈을 펑펑 써댔다. 2003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후임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각종 복지 지출을 남발했다. 국가 재정 지출은 한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8% 적자에 달했다. 모자라는 돈은 중앙은행이 마구 찍어댔다. 아르헨티나 통화공급(M2) 증가율을 보면 급격한 우상향을 그리는 그래프가 뚜렷했다. 그 결과 물가가 급등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매년 수십 퍼센트를 넘더니 지난해 211%까지 찍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는 130%까지 상향했다. 금리가 비현실적으로 높아도 물가 상승률이 이보다 뛰니까 예금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 수중에 들어온 돈은 달러화로 바꾸는 게 득이었다. 너도나도 달러를 찾기 시작했고 공식 환율과 다른 암시장 환율이 형성됐다. 시내 중심가 환전상에게 100달러를 건네면 공식 환율의 2배에 달하는 페소화를 넘겨줬다. 지난해 목격한 광경이 바로 이랬다.


아르헨티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재정 동향을 보면 1분기 기준 관리재정수지가 75조 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사상 최대인 55%를 넘겼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정부 부채가 2029년 6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은 재정을 계속 쏟아부으라고 압력을 주고 있다. 전 국민에게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최소 13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3조 원,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의 경우 추계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다.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의 성향을 봤을 때 이는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재정 지출을 요구할 것이며 일부는 등 떠밀려 실행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 자신들의 과오가 무엇인지를 고백했다. 새로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는 “우리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지출하는 데 중독돼 있었다”고 머리를 숙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