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회복세를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거시정책의 필요성이 높지 않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야당이 처분적 법률 형태로 13조 원 규모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현안분석 ‘고물가와 소비 부진, 소득과 소비의 상대가격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KDI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된 2022년 이후에도 실질민간소비가 실질국내총생산(GDP)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2020년 당시 데믹의 여파로 감소했던 명목민간소비는 2023년께 명목GDP 수준으로 회복하는 흐름을 보이지만 실질민간소비는 여전히 실질GDP 보다 상당폭의 격차를 보였다.
실질지표는 명목지표에서 물가상승 효과를 제외해 산출한다. 따라서 GDP측면의 물가 상승(GDP디플레이터)에 비해 소비 측면의 물가 상승(소비자물가)이 더 높았던 탓에 실질 소비가 억제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2020~2021년 GDP디플레이터와 소비자 물가의 변화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22~2023년에는 GDP디플레이터는 연 평균 1.7% 성장한 데 비해 소비자 물가는 연 평균 3.9% 상승했다. 다시말해 화폐단위로 계산한 소비(명목민간소비)는 명목GDP만큼 늘었지만 소비자 물가의 높은 상승으로 인해 구매 총액이 늘었을 뿐 실제 구매한 물건의 총량은 정체돼있다는 의미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결국 소득 측면 물가인 GDP디플레이터와 소비 측면 물가인 소비자물가의 변화폭 차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소득과 소비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KDI는 GDP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 사이의 격차를 만드는 두 가지 요인으로 국제유가와 반도체 가격을 꼽았다. 유류는 수입품이므로 유가변동은 GDP디플레이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소비자 물가에는 상당한 충격을 준다. 반면 반도체는 주요 수출품인 데 비해 소비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 반도체 수출 가격 변동은 GDP 측면 물가에는 크게 기여하는 반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하다. 동시에 유가와 반도체 수출 가격은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요인이기도 하다.
정 실장은 “2022년의 경우 국제유가가 크게 상승해 소비자물가는 크게 오른데 비해 GDP 디플레이터 상승폭은 제한됐다”며 “반면 2023년에는 반도체 수출 가격이 하락해 GDP 디플레이터가 떨어진 반면 소비자물가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실질GDP와 실질민간소비 사이의 괴리가 2022년에는 국제유가 상승, 2023년에는 반도체 수출가격 하락때문에 심화됐다는 설명이다. 정 실장은 “2023년의 경우 실질경제성장률은 1.4%로 떨어진데 비해 소비자물가가 3.4%로 가파르게 상승해 실질구매력이 정체됐다”고 부연했다.
KDI는 2024년에는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가격이 크게 올라 그동안 누적된 실질GDP와 실질소비 사이의 격차가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유가 상승폭을 0%~18%, 반도체 수출 가격 상승폭을 22~50% 사이로 두고 분석해본 결과 GDP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 사이의 상대가격(GDP디플레이터/소비자물가)이 0.1~0.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 실장은 “수출의 빠른 증가가 실질구매력 개선으로 이어져 실질민간소비 여건도 점차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현 상황에서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 거시정책의 필요성은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소비 부진이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부양책이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를 교란해 금리 인하를 늦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