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전설과 제자 '한글의 魂' 알린다

◆안상수·김영나, 부산서 첫 상업전
1985년작 '안상수체'로 세계적 명성
대표작 '홀려라' 등 다양한 문자 선봬
내달 9일까지 오케이앤피 전시장서
김영나는 조각·벽화 등으로 재편집
국제갤러리서 각양각색 작품들 공개

지난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은 대만의 기업문화재단 산하 미술 기관인 ‘쉐쉐 인스티튜트’에 한 전시를 통째로 수출한다는 이례적인 소식을 전했다. 미술관이 기획한 전시가 그대로 외국의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내용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전시는 당시 그가 설립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파티)의 활동을 조명한 세마그린 기획전 ‘날개·파티’로, 순수예술을 지향하던 서울시립미술관이 처음으로 ‘세마 그린’에 디자이너를 초대해 화제가 됐다.



타이포그래피 거장 안상수. 사진제공=오케이앤피



타이포그래퍼 안상수의 개인전이 갤러리 오케이앤피에서 열린다. 사진제공=오케이앤피


기성세대에게는 ‘안상수체’로, MZ세대에게는 ‘이효리, 황희찬 타투 문양(생명평화무늬)’으로 잘 알려진 타이포그래피 거장 안상수가 부산 갤러리 오케이앤피에서 생애 첫 상업 전시를 열었다. 작가는 네모의 틀 안에 놓인 한글을 틀 밖으로 꺼내 디자인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장본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흔하지 않던 1985년 탈네모꼴의 ‘안상수체’를 고안해 글씨를 이용한 조형 실험을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에 적용했다.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라는 명성을 얻은 이유다.



‘홀려라’ 사진 제공=오케이앤피

‘홀려라’ 사진 제공=오케이앤피

‘홀려라’ 사진 제공=오케이앤피



이효리와황희찬 타투로 유명한 ‘생명평화무늬’. 사진 제공=오케이앤피


이 같은 작가의 실험 정신은 대형 미술 기관의 관심을 끌게 되고, 2002년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로댕갤러리 전시회를 비롯해 2007년 구텐베르크상 수상 기념 라이프치히 HGB초대전,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도쿄비엔날레(2021), 샌디에이고 미술관(2023), 광저우 트리엔날레(2023) 등 해외의 주요 전시에도 참여하며 30년 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오케이앤피에서 열리는 개인전 ‘홀려라’는 서울시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 중 작가가 2017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문자도’ 시리즈로 구성된다. 문자도는 한글과 민화를 조합해 만든 그림이다. 대표작 ‘홀려라’는 글자로 이뤄진 형상이지만 실제로 작품을 보면 읽을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수없이 오가게 한다.



‘홀려라’ 사진제공=오케이앤피


작가는 국내에서 컴퓨터는 커녕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던 시기에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기업 ‘안그라픽스’를 창립해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기 전까지 6년간 대표직을 역임했다. 안그라픽스는 한때 수많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의 꿈의 기업이기도 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첫 개인전 ‘이지 헤비(easy heavy)’를 열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김영나는 한국 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안그라픽스와 N4크리에이티브 그룹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후 2008년 네덜란드 아른험미술대학에서 벨크플라츠 티포흐라피 석사 과정을 마쳤다. 평소에도 안상수와 친분을 나누며 지내고 있는 김영나는 2011년 이후 디자인을 회화, 조각, 벽화 등 미술 언어에 적용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은 보통 스티커와 같은 대량생산 제품에 주로 적용되는 수집 가능한 대상으로 여겨지는데, 작가는 이 수집된 이미지를 추상화의 과정을 거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편집한다. 작가는 “디자인은 무언가를 아름답게 꾸미거나 주문 받은 대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한 결과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상수의 전시는 6월 9일까지 열리며 김영나의 개인전은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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