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란에 '서명하세요' 썼는데 가입…ELS 65% 배상

금감원, 홍콩 ELS 분조위 대표사례 공개
배상 비율 30~65% …농협이 최고치

홍콩ELS사태피해자모임 관계자들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펀드 피해를 야기한 금융기관과 임원, 전 금융위원장 등 180인 고발 및 전액배상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70대인 A씨는 지난 2021년 1·2월 농협은행에서 주가연계증권(ELS) 2건을 가입했다. 가입 금액은 5000만 원이었으나 2600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 금융감독원이 민원조사 등을 진행한 결과 농협은행은 고령자인 A씨에 대한 사전확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데다, 가입서류 확인란에 본인 서명이 아닌 ‘서명하세요’라고 기재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가입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이 가산요인이 돼 A씨에 대한 최종 배상 비율은 농협은행의 기본 배상 비율인 40%보다 25%포인트 높은 65%로 책정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3일 홍콩H지수 ELS 주요 판매사(농협·국민·신한·하나·SC제일은행)의 대표 사례 분쟁조정 결과 최종 배상 비율이 30~65%로 결정됐다고 15일 밝혔다.


금감원은 모든 은행이 2021년 ELS 판매분에 대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최소 20%의 기본 배상 비율을 적용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2021년 3월 25일) 시행 이후 판매분에 대해서는 적합성(적정성) 원칙 위반까지 적용돼 국민·농협·SC제일은행에는 30%, 신한·하나은행에는 20%의 기본 배상 비율을 매겼다.


이번 분조위에 부의된 대표 사례 5건은 모두 금소법 이전 판매분으로 최소 20%의 기본 배상 비율이 적용됐다. 국민·하나·SC제일은행 사례에는 ‘설명의무’와 위반에 더해 ‘적합성 원칙’ 위반도 발견돼 총 30%의 기본 배상 비율이 책정됐다. 여기에 ‘부당 권유 금지’까지 위반한 신한·농협은행의 기본 배상 비율은 40%로 매겼다.


이러한 기본 배상 비율에 투자자별 가감 요인을 반영한 결과 농협은행의 최종 배상 비율이 65%로 가장 높았다. 이어 △KB국민은행(60%) △신한은행(55%) △SC제일은행(55%) △하나은행(30%) 순이었다.


농협은행의 사례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금감원은 농협은행의 기본 배상 비율 40%에 △판매사의 내부통제 부실 책임(대면가입) 10%포인트 △금융 취약 계층(만 65세 이상) 5%포인트 △판매사의 모니터링콜 부실 5%포인트 등 총 20%포인트를 가산했다. 여기에 투자자가 예·적금 가입을 목적으로 은행을 방문한 것이 인정돼 10%포인트가 더해졌다. 하지만 투자자가 과거 가입한 ELS에서 지연 상환을 경험한 점이 있어 5%포인트를 차감해 최종적으로 65%의 배상 비율을 매겼다.


배상비율이 가장 낮은 하나은행의 경우 고령자가 아닌 40대 투자자가 6000만 원을 투자해 3000만 원 손해를 봤다. 해당 사례에서는 내부통제 부실 책임만 인정돼 배상 비율 10%포인트가 가산됐다. 하지만 투자자가 과거 ELS 지연 상환을 경험했고 투자액이 5000만 원을 넘는다는 점을 반영해 각각 5%포인트씩 배상 비율을 차감했다. 최종 배상 비율은 기본 배상 비율과 동일한 30%로 결정됐다. 은행의 부당 권유가 있었는지, 투자자의 은행 방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투자 금액과 연령대는 어떤지에 따라 배상 비율이 35%포인트나 벌어진 것이다.


KB국민은행에서는 암 보험 진단비 4000만 원으로 정기예금을 하러 온 고객이 직원 권유로 ELS에 가입했다 1900만 원의 손실이 났다. 기본 배상 비율 30%에 내부통제책임 10%포인트, 예·적금 가입목적 10%포인트, 투자자정보확인서상 금융취약계층 5%포인트 , ELS 최초투자 5%포인트 등이 인정돼 60% 배상 비율이 확정됐다.


이번 분쟁조정은 은행과 투자자 양 당사자가 조정안을 제시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조정이 성립한다. 나머지 조정대상에 대해서는 ELS 분쟁조정기준에 따라 자율조정 등의 방식으로 처리될 계획이다.


금융권에서는 대표 사례에 대한 분조위 결과에 판매사·기간별 기본 배상 비율이 공개되면서 향후 은행들도 자율 배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분조위 결정을 통해 은행별·판매기간별 기본 배상 비율이 명확하게 공개됨에 따라 금융소비자와의 자율 조정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올 3월 당국이 발표한 조정안을 기반으로 구체화된 기준을 만들어 향후 배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도 “투자자들의 배상안 수용 여부에 대한 기준점으로는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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