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전쟁 속에 어머니를 살린 왕진 의사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


6·25전쟁 당시 어머니와 동생을 붙잡고 대구까지 피란 내려와 산기슭에 터를 잡은 다음 날, 어머니는 한밤중에 토사곽란으로 혼절하고 말았다. 열한 살 소년은 대구 시내로 내달려 문에 병원 마크를 새긴 집을 찾아 헤매며 기어이 의사 선생님을 어머니 곁으로 안내했다. 네모난 알루미늄 통에서 앰플 주사와 약을 꺼내 치료한 덕분에 어머니가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어린 소년은 그날의 의사 선생님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40년간 가요무대를 진행하는 국민 아나운서 김동건 씨의 사연이다.


이제는 동네마다 병·의원이 있고 왕진보다 외래 진료가 보편화됐다. 의사가 집까지 찾아와 주사를 놓거나 약을 처방해주는 왕진이 드물지 않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초고령사회가 다가오면서 왕진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낙상은 노인을 아프게 하는 대표적 요인이다. 낙상으로 골절되면 종합병원에서 열흘 남짓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한다. 퇴원 후 집에서 치료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요양병원을 전전하는 노인이 많다.


일찌감치 고령화를 맞이한 일본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병원보다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이라는 이름대로 퇴원 시 ‘케어 매니저(Care Manager)’가 재택 의원과 재가 서비스를 연결해 왕진 서비스를 누리게 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100명이 훨씬 넘는 왕진 의사를 거느리고 환자를 주 2~3회 방문하며 연간 14만 건 이상의 방문 진료를 하는 ‘유소카이’ 재택 의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진은 빠르게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2019년 왕진 수가 시범사업이 시작된 후 950여 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2만 1000여 명의 환자에게 방문 진료를 제공했다. 2022년 28개소로 출발한 장기요양재택의료센터는 큰 호응을 바탕으로 현재 95개소, 2026년에는 전국 250개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문 진료, 간호와 연계한 돌봄 서비스가 보다 촘촘해지는 것이다.


왕진 수가 신설과 관련 시범사업 시작을 앞둔 2019년 서울 노원구의 한 의원을 찾아 왕진길을 동행한 적이 있다. 30여 년간 지역의 왕진길을 걸어오신 원장님은 그날도 2㎞ 넘게 떨어진 곳의 5층 아파트를 계단으로 올라 환자 곁에 앉았다. 집에 누워 있던 90세 노인의 혈압·혈당을 재고 주사를 놓기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현장의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고, 관련 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 등의 노력을 한 겹 한 겹 덧대며 왕진 수가가 탄생했다.


지난해 5월 노원구를 다시 방문해 변함없는 호응과 만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왕진은 좋은데 진료비는 부담스럽다”며 푸념하던 환자가 눈에 밟혀 중증 재택 환자의 본인 부담 비율을 30%(3만 9000원)에서 15%(1만 9000원)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 올 3월 민생 토론회에 보고했다. 수요자와 교감하며 왕진 사업은 그렇게 계속 진화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