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정치·경제 ‘다극화’ 이끌겠다”…대미 전선 강화 의기투합

■43번째 만남서 브로맨스 과시
푸틴, 집권 5기 첫 순방 中 선택
중동 분쟁 등 미국식 해법에 반대
“美-동맹국들 對北 도발 강력 반대”
러, 中과 車·에너지 등서 경협 확대
美제재 받는 하얼빈공대 방문 예고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화당에서 열린 공동 서명식에서 협약서에 사인한 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등 방중 일정에 돌입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만큼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회담을 통해 ‘제한 없는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세계 평화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면서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유지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에너지 분야를 비롯해 첨단산업 등의 경제적 협력도 확대하며 대미 단일대오를 굳건히 다지기로 했다.


16일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와 중국중앙(CC)TV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새벽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3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5연임을 확정한 푸틴 대통령은 이달 7일 취임식 이후 채 열흘도 안 돼 첫 해외 일정으로 중국을 찾아 시 주석을 만나며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소규모 회담에 이어 정상회담을 연이어 진행했다. 시 주석은 “존경하는 푸틴 대통령, 내 오랜 친구(老朋友), 중국 국빈 방문을 환영한다”며 “중러 관계는 4분의 3세기를 지나면서 폭풍우를 겪었고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기회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세계 무대에서 안정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양국 협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양국 정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시 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연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일치되게 인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유럽 대륙이 조기에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를 기대하고 이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계속 발휘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상황을 상세히 알려줄 것이라면서 “우리는 상황을 조정하기 위한 우리 중국 동료와 친구들의 이니셔티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최근 시 주석이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요청한 파리 올림픽 기간 휴전 등에 대한 별도 언급은 없었다.


양국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미국 중심의 세계 일극 체제에서 탈피해 정치·경제적 ‘다극화’를 함께 이끌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은 세계 경제 관리의 재활과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같은 다자 기구의 개혁·탈정치화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에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 시스템과 국제법에 기반한 세계 질서를 굳게 견지하고 유엔과 APEC 등 다자 플랫폼에서 긴밀히 협조한다”고 화답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결도 시급하다며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전제로 하는 ‘두 국가 방안’을 강조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 도발 행동’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낳을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을 통한 대미 공동 대응을 강화하는 데도 뜻을 모았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대중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전기차·배터리 등에 ‘폭탄 관세’까지 부과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갖게 됐다.


시 주석은 “협력 구조를 더욱 최적화하고 경제 및 무역과 같은 전통적인 분야에서 협력 모멘텀을 공고화하겠다”며 “기초과학·첨단 분야의 협력 잠재력을 발굴하고 항구 및 교통 물류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시장에서 중국산 자동차 제조업체를 환영한다”면서 “중러는 에너지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있다”며 협력 확대를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이 하얼빈을 방문하는 것도 양국 대미 전선 강화의 상징성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17일 미국이 제재 대상으로 포함한 하얼빈공대를 방문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하얼빈에서 개최되는 제8회 러시아·중국 엑스포 개막식에도 참석해 양국 경제협력을 과시할 예정이다. 중국은 동북 3성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적극 개발 중이고 러시아 역시 극동 개발을 추진하는 만큼 하얼빈은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는 양국의 공통 과제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