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피초(59) 슬로바키아 총리가 15일(현지 시간) 암살 시도로 보이는 총격에 큰 부상을 입었다. 총리는 총격범이 쏜 총알이 배를 관통하며 한때 중태에 빠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백한 정치적 의도’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만큼 사회 분열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토마시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 겸 환경부 장관은 BBC 뉴스에 출연해 “(피초 총리가)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 진행됐다. 현재로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피초 총리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부터 약 190㎞ 떨어진 한들로바에서 지지자들과 만나던 중 한 남성의 기습적인 총격을 받았다. 총격범이 쏜 다섯 발의 총탄 중 세 발이 총리의 복부 등을 관통하면서 피초 총리는 심각한 외상을 입었고 4시간 가까이 수술을 받았다.
총리에게 총을 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는 시집 3권을 출간한 슬로바키아 작가 협회 회원으로 알려진 71세 남성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총격범은 ‘폭력 반대 운동’이라는 정치 단체를 설립한 이력이 있으며 8년 전 한 동영상을 통해 이민과 증오·극단주의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유럽 정부는 이 혼란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피초 연합 정부 측의 일부 정치인들은 총리에 반대하는 야당이 공격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투시 슈타이 에슈토크 내무장관 역시 “범인의 결심은 4월 피초 연합 정부의 동맹인 페테르 펠레그리니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이뤄졌다”며 “이번 암살(시도)은 명백한 정치적 동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피초 연합 정부가 만들어온 ‘분열의 정치’가 초래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초 총리는 사회 분열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스트롱맨(우파 포퓰리스트)’ 리더십을 보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1999년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스메르)을 창당하고 이를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10월 네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하는 등 슬로바키아 역사상 가장 오래 집권한 정부 수반이 됐다. 하지만 강력한 반이민 조치와 친러시아 성향,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책을 펼치며 자유주의 및 친유럽연합(EU) 단체와 깊은 갈등을 빚어왔다. 또 언론을 통제했고 고위 공직자의 부패 사건을 다루는 특별검찰청을 폐지했으며 금융 범죄의 형량을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슬로바키아 전역을 그에 반대하는 시위 물결로 뒤덮이게 했다. 블룸버그는 “피초 총리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처럼 성소수자 권리나 이민자에 대한 분열을 정치에 이용했다”며 “이런 전략은 현재 슬로바키아를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되게 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슬로바키아를 유럽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국가로 꼽았다. 슬로바키아 외무부 고문이었던 밀란 니치는 FT에 “슬로바키아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살해 위협이 빈번하다”며 “총리에 대한 총격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유럽의회 선거(6월 6∼9일)를 앞두고 극우 정당의 상승세와 러시아 선거 개입 등에 이어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암살 기도까지 발생하는 정치적 혼란에 유럽 각국이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