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醫政) 석달째 평행선 달리며 '강대강' 대치…대화의 문 언제 열릴까

정부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 추진"
의료계 "증원 원점에서 백지화해야"
각계에서 "의료 정상화해야" 목소리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가 19일로 석 달째를 맞았다. 법원의 결정이후 정부는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고 의료계는 이와 관계 없이 “원점에서 증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정(醫政)이 전례 없는 장기간 의료공백에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언제 대화의 문이 열릴지 관심이다. 법원의 결정으로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의정이 대립을 멈추고 정상화를 위한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날은 대부분의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며 병원을 떠난 지 석 달이 되는 날이다. 정부가 2월 6일 2025학년도 입시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 5038명씩 뽑겠다고 발표한 지 2주가량 지난 2월 19일부터 사직은 시작됐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는 처음에는 전체의 절반가량이었지만, 점점 늘어 3월 말에는 93%까지 늘었다. 전공의들은 수련생 신분이지만 당직 근무를 도맡고 환자의 주치의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이들이 떠난 대형병원은 휘청거렸다. 전공의들의 이탈과 함께 의대생들도 휴학으로 집단행동을 했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 40개 의대의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1만626건으로, 전체(지난해 4월 기준 1만8793명)의 56.5%에 달한다.


전공의가 없는 병원에서 피로가 누적된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이 임박하자 사직서를 내며 대치 전선에 뛰어들었다. 3월 25일부터 각 의대에는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행렬이 이어졌고 이후 주 1회 외래진료 휴진과 수술 중단 같은 '셧다운'도 실시됐다.


유일한 법정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을 반복하며 정부를 압박했고, 의정 간 제대로 된 대화는 성사되지 못했다. 의협 회원인 의사들은 강경파 임현택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뽑으며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이자는 의지를 드러냈다. 의사들이 사직서를 내던지며 격하게 반발했지만, 여론은 차가웠다. 의사들은 이런 분위기를 '의사의 악마화'라고 비판했지만, 의사들의 입에서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국민이 원하겠냐", "제(의사)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등의 강성 발언이 나오면서 여론은 점점 의사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 백지화'라는 한목소리만 냈다면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증원 강행의 배경에는 '의사들의 반발은 정부의 정책을 집단의 힘으로 좌절시키려는 시도'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동안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시도가 의사들의 집단적인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는 불만도 정부 내에 깔려있었다.


정부는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말 이탈 전공의들에 대해 그동안의 '기계적 처벌' 방침 대신 '유연한 대응'을 하기로 방향을 틀며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했지만, 본격적인 대화는 성사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 사이 면담이 극적으로 성사됐으나, 박 위원장이 면담 후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적으며 파국으로 끝이 났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는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대학에 '자율 모집'을 허용하며 한발짝 물러나기도 했는데, 의정 갈등 상황에서 증원 규모와 관련한 정부의 유일한 양보였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뚝심 있게 몰아붙이며 '27년 만의 증원'이라는 성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의대 증원 같은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는데 충분한 소통과 숙의가 없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가 계속하던 강대강 대치는 대화나 타협이 아닌 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변곡점을 맞이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의료계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각하·기각 결정을 내렸다. 의대 증원에 제동이 걸릴지, 정부가 증원 추진에 정당성을 갖게 될지 모두의 관심이 쏠렸는데,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전형심의위원회가 기존에 대학들이 제출했던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하면 각 대학의 '수시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내년도 입시의 의대 정원이 확정된다.


법원의 결정으로 의대 증원은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이대로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정 갈등은 오히려 격화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 교수단체는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 '매주 1회 휴무', '1주일간 휴무' 등 집단행동을 예고한 바 있다. 의협과 의대 교수 단체 등은 17일 "재판부의 결정은 필수의료에 종사할 학생과 전공의, 교수들이 필수의료 현장을 떠나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공의들은 법원의 결정에도 '병원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달 말 의대 증원 확정을 계기로 의료계의 반발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빅5 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은 법원 결정과 관계 없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며 "지금과 같은 (병원에 전공의가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계에서는 이번 법원 결정을 계기로 정부와 의료계가 의료 정상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보건의료산업노종조합은 17일 성명에서 "전공의와 의대 교수, 의대생은 더 이상 의대 증원에 딴지를 걸지 말고 집단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더 이상의 논쟁과 갈등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조속한 의료정상화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정부가 전공의들이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왜곡된 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고, 전공의들이 돌아와서 안심하고 일할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계 내에서도 대치를 멈추고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더 이상 소모적인 대치는 그만두고, 좋은 의료정책이 뭔지를 전문가적 식견에서 고민해야지 숫자에 연연하면 안 된다"며 "필수의료 패키지에 좋은 게 많이 있으면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단했던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재개하는 등의 '강경책'과 의대생 의사국가고시 시험접수 연기 등 '유화책'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전공의 근무시간 개선이나 전문의 중심 병원 구축, 필수·지역의료 수가 개선 같은 유인책은 이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를 통해 구체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특히 전공의의 의료현장 이탈 기간 중 일부를 수련기간으로 인정해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고연차 레지던트의 경우 이탈한 지 석 달이 지나면 전문의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되는데, 휴가 등을 활용한 경우 이탈 기간에서 제외할 여지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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