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칼럼]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관전 포인트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中, 한일과 개선 통해 美압박 상쇄 노려
회의 정례화·RCEP 조기 서명 추진 등
역내 평화 진전 위한 3국 협력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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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가 논의 중이다. 2019년 12월 중국 청두에서 제8차 회의가 개최된 후 4년 반 만이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 강제징용 등 한일 과거사 문제, 한중 관계 및 중일 관계 악화 등이 얽히면서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특히 최근 한일이 관계 개선을 통해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자 중국이 소극적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그러나 지정학·지경학적으로 얽힌 3국 간 대화 단절이 결과적으로 역내 교역의 축소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안보 불안정성을 높이면서 이를 풀기 위한 다각도의 물밑 접촉이 있었다.


특히 개최국인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왜냐하면 2023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대중국 무역 적자가 발생했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 역할론이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한중 관계의 장기 교착에 따른 정치적 피로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일·한미일 협력을 공고화한 상태에서 미국을 의식한 한중 관계 개선에 대한 외교적 부담도 상대적으로 줄었다. 실제로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한중일 협력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일본도 한국과 정책 보조를 맞추는 한편 갈등 위주의 중일 관계를 돌파하고자 했다.


문제는 중국이라는 변수다. 현 단계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미중 전략 경쟁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1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중러 수교 75주년을 즈음해 정상회담을 열었지만 미중 관계를 의식하면서 러시아와의 협력 수위를 조절했다. 즉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화려한 정치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중 관계의 가드레일을 넘지 않으려는 것이 역력했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의 우방인 한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양자 동맹의 지역화를 막는 등 상쇄 전략을 찾고자 했고 특히 한국을 제2의 일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전략적 고려도 했다. 다시 말해 중국은 한중일 협력을 통해 한미일 안보 협력에서 오는 압력을 줄이는 것이 필요했던 셈이다.


이처럼 한중일 정상회의에 임하는 각국의 셈법은 복잡하다. 특히 배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력하는 가짜 친구(superficial friend)라는 점에서 대만, 북핵, 남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 상위정치의 예민한 문제에 대해 합의하기는 어렵지만 오랜 공백을 깨고 만나는 것 자체로 한중·중일 정상회담의 공백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인적 교류, 과학기술, 지속 가능한 개발, 공중 보건, 경제협력·무역, 평화·안보 중에서 비전통 안보 이슈에서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대만과 북한 문제 등 평화·안보 분야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과거사 문제 등은 외교적 수사를 주고받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패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우선 제8차 회의에서 채택한 ‘향후 10년 협력 비전’, 즉 지역 및 국제 문제에서 3국 소통과 조율 강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조기 서명 추진,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가속화, 증권·은행·보험 등 분야의 협력, 청소년 교류 활성화 등의 진전 여부다. 둘째, 한중일 정상회의의 정례화와 제도화다. 이것은 어떠한 3국의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역내 불확실성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위기관리 기제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유무역과 공급망 협력의 수위다. 중국은 이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해왔으나 한일 양국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고려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화가 필요한 것은 한 손을 잡고 있어야 다른 한 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협력이라는 손을 잡으면서 한중일 협력도 가동하는 것이 역내 평화와 번영을 진전시켜 나가는 지혜다. 더구나 오늘의 세계는 불확실성, 불명확성, 불안정성,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4불(不) 속에서 모두가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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