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외 빅테크 14개사가 인공지능(AI)의 무분별한 개발을 자제하고 안전성을 키우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가짜뉴스(허위정보), 개인정보 침해, 혐오와 편견 학습 등 AI의 부작용과 악용 우려에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정부가 한 목소리로 선제적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자 주요 테크 기업들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특히 정부는 AI 부작용의 하나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저전력 반도체를 포함한 차세대 AI반도체 산업 육성과 연계해 기업들과 협력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22일 삼성전자·네이버·카카오·SK텔레콤·KT·LG AI연구원 등 국내 기업과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오픈AI·앤트로픽·어도비·IBM·세일즈포스·코히어 등 해외 기업 총 14개사 대표나 임원들은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한국·영국 정부 주최로 열린 ‘AI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 ‘서울 기업 선언’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주재한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안전·혁신·포용성이라는 3대 원칙을 바탕으로 발표한 ‘서울 선언’을 기업들도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빅테크들은 서울 선언의 주제에 따라 ‘책임감 있는 AI 개발과 사용’, ‘지속가능한 AI 개발과 혁신’, ‘공평한 이익을 보장하는 모두를 위한 AI’ 등 세 가지 가치를 내걸고 각각의 실천 방안을 추진한다. AI의 위험을 평가해 관리하고 AI가 만든 콘텐츠에 워터마크를 넣어 가짜뉴스 같은 불법 콘텐츠 확산을 막기로 했다. 또 중소기업·스타트업 지원, 인재 육성, 개발도상국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맞춤 서비스 개발에도 동참하기로 했다.
빅테크 대표들에 이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필두로 20개국 관계부처 장관도 ‘장관 세션’을 갖고 서울 선언을 구체화하는 ‘서울 장관 성명’을 채택했다. 이 장관은 “성명에는 저전력반도체 등 AI 확산에 따른 막대한 전력 소모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AI·반도체 비전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AI반도체는 AI 연산에 필수적이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아 저전력화가 요구되며, 기업들의 AI 부작용 경감 노력에 맞춰 기술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과기정통부는 대기업들과 논의 기구인 ‘AI반도체 최고위 전략대화’를 출범하고 국가전략기술로서 연구개발(R&D)을 지속 강화할 방침인 만큼 이번 성명을 AI반도체 산업 육성 및 국제 협력 강화의 계기로도 삼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영국처럼 국내에도 AI안전연구소가 연내 들어선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에 최소 인력으로 기관을 신설하고 향후 더 큰 규모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장관은 “오늘 논의를 내년 초 프랑스에서 열릴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와 산학계 전문가 70여명의 비공개 실무 논의 행사인 ‘고위급 라운드테이블’도 마련됐다. 라운드테이블 참석자인 제리 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과학기술혁신국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디지털 경제 전망에 따르면 AI 도입 사례는 아직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편중돼 있는 만큼 향후 더 많은 분야에 대해 AI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도 “AI 생태계 혁신의 수단으로 오픈소스(개방형) 모델 역시 참석자들 사이에서 유망 기술로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세계적 석학 앤드류 응 스탠퍼드대 교수는 AI 기술이 아닌 서비스를 규제해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