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이날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재학 중이던 1956년 ‘문학예술’지에 ‘갈대’ ‘묘비’ 등의 작품이 추천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에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첫 시집 ‘농무’를 펴냈다.
시인은 이후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새재(1979)’ ‘달 넘세(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갈대(1996)’ ‘낙타(2008)’ 등의 시집을 냈다. ‘한국 현대시의 이해(1981)’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1983)’ ‘우리 시의 이해(1986)’ 등의 시론·평론집도 내놓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즐겨 찾는 애송시로 꼽힌다.
고인은 민초의 슬픔과 한,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민중적 서정 시인’이었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그를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생전에 만해문학상·단재문학상·대산문학상·시카다상·만해대상·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동국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신 시인이 별세하자 문단 안팎에서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영미 시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내가 아는 신경림 선생님은 정직하고 선량하고 욕심이 없는 분이었다”며 “어린아이처럼 맑은 동심을 간직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을 가졌던 시인”이라고 기억했다.
장례는 고인과 그의 작품이 한국 현대시와 문단에서 차지하는 높은 위상을 고려해 주요 문인 단체들이 함께하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병진·병규 씨와 딸 옥진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5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