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반도체가 곧 민생”이라며 총 26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지원액의 70%인 18조 1000억 원은 금융 지원에 쓰인다. 당초 10조 원 남짓 지원하려 했으나 규모를 대폭 늘렸다. 용수·전기 등 인프라와 연구개발(R&D) 및 인력 양성 지원 등에 각각 2조 5000억 원과 5조 원 이상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대기업 특혜’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해외 경쟁국들과 같은 보조금 지급 등의 파격적인 지원책은 없었다. 인공지능(AI) 첨단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자칫 한국이 도태할 수 있는 경고음이 울리자 정부가 ‘간접 지원’ 중심으로 여러 방안들을 끌어모아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집행 속도다. 2019년 SK하이닉스가 용인시에 짓겠다고 한 공장 4곳은 6년째 착공하지도 못하고 있다. 토지 보상과 용수·전기 시설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 평택 공장은 송전선 문제로 5년을 허비하기도 했다. 반면 해외 반도체 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기술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엔비디아는 1분기(2∼4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2% 급증했다고 22일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차세대 산업 혁명이 시작됐다”며 “우리는 다음 성장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의 절대 강자인 대만 기업 TSMC는 최근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일부 부품을 직접 제조하겠다고 선언하며 첨단 AI 메모리 반도체 패권까지 노리고 있다.
글로벌 첨단 반도체 패권 경쟁은 분초를 다투는 단거리 국가 대항전처럼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사업 수장을 전격 교체하며 기술 초격차 확보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지원책을 반복하지 말고 속도전 같은 실천으로 반도체 산업 발전을 뒷받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시간이 보조금이고 문제 대응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 발표한 정책이라도 전속력으로 실행해야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여야 정치권도 입법으로 전략산업 전방위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